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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 '과외 총량 불변의 법칙'

Los Angeles

2011.04.1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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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수학 월요일=바이올린 화요일=테니스 수요일=중국어 목요일=테니스 토요일=성당. 미국에 온지 한 달도 안돼 과외 종목이 확정됨으로써 햄달새의 일과표가 완성됐다.

햄달새의 일정에 따라 나의 기상은 오전 5시 30분 취침은 유동적이지만 대략 밤 11시 전후로 정해졌다. 그 사이 내가 해야 할 주 업무는 운전기사 일과 식사 준비하기 등이었다.

운전은 매일 아침 7시 15분 학교 데려다 주기 오후 2시 45분 학교로 태우러 가기는 고정 코스였고 요일에 따라 과외 할 곳으로 이리저리 데려다 주고 데려 오기가 추가됐다. 식사 준비는 아침과 저녁이 기본이었고 종종 간식도 장만해줘야 했다. 물론 저녁 식사가 끝나고 잠자리기에 들기 전에 한 시간 안팎의 수학 과외는 내 몫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스개 소리로 '총량 불변의 법칙'을 말하곤 한다.

헌데 사교육 천국의 국민 한국인들에게는 과외에도 총량 불변의 법칙이 적용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아이 엄마도 우리 아이들도 한국인치고는 과외를 거의 받지도 시키지도 않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결국 햄달새를 맡아 기름으로써 나도 과외 세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과외 총량에서 나도 한국인으로서 예외가 아닌 셈이 된 것이다.

과외는 학교가 끝난 뒤 바로 이어지게 시간이 짜였다. 과외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보통 오후 5시 30분 이쪽 저쪽이었다. 아침 7시가 조금 못돼 일어나는 햄달새로서는 과외 때문에 거의 12시간 만에 집에 들어오게 돼 있는 것이다.

한참 크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인 햄달새는 귀가하면 방 문턱을 넘기 무섭게 배고프다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보통은 옷도 갈아 입을 사이 없이 부엌으로 달려가 손만 씻고 곧바로 저녁을 준비했다. 이어진 저녁 식사와 설거지 그리고 학교 숙제 봐주기와 수학 과외를 끝내고 나면 밤 9시가 넘기 일쑤였다.

과외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고 살다가 나이 50줄이 다 돼서 그 위력이랄까 쏟아 부어야 하는 에너지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과외에 대해 이전부터 막연하게 거부감이 있었지만 막상 과외를 시켜보니 진정으로 별로 할 짓이 못됐다.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했지만 예컨대 회사 일 때문에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류의 생각을 해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과외는 달랐다. "이게 무슨 짓이냐"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한 달쯤 햄달새를 차에 싣고 이리저리 과외를 뛰어보니까 정말 진이 다 빠졌다. 과외 하기 위해 아이를 키우는지 아이를 키우는 일환으로 과외를 하는지 헷갈렸다.

왜 이렇게 과외에 쫓겨 살아야 하는가. 아무리 머리를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과외에 대한 내 입장은 분명하다. 영어든 수학이든 체육이든 그 어떤 과목이든 성적이 한참 평균 이하여서 도저히 자력으로는 동급생을 따라 잡을 수 없다면 과외를 해도 좋다. 아니면 특정 과목을 너무 좋아해서 학교 수업만으로는 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도 과외를 할 수 있다.

이들 두 가지 이유를 빼고는 특히 어린 학생들이 과외에 짓눌려야 할 어떤 합리적 이유도 찾아낼 수 없다. 과외를 그 것도 가능한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햄달새의 엄마 그러니까 내 동생이 슬슬 아주 못마땅한 서울 아줌마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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