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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세상] 식인종은 어디에도 없다

Los Angeles

2011.04.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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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UC리버사이드 교수·인류학
살인을 하고 인육을 먹는 일은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이다. 같은 종을 잡아 먹는 경우는 고등동물 세계에서는 거의 없다.(암컷이 교미 후에 수컷을 먹어 치우는 거미는 고등동물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금수들의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행위를 밥 먹듯이(?) 하는 종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식인종이다. 코에 뼈를 꿴 미개인이 코 큰 사람을 붙잡아서 불을 활활 때고 있는 큰 솥에 집어 넣고 끓여 먹는 장면은 흔한 만화 소재이다.

옛날 유행하던 농담 중에 '식인종 시리즈'라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미개인과 동급인 원시인인 네안데르탈인도 식인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식인종이라는 뜻의 단어 '캐니벌'의 기원은 15세기 미 대륙이 인도라고 착각한 컬럼버스의 계속되는 착각이었다고 한다. 컬럼버스는 서인도해에서 만난 사람들이 몽골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위대한 칸의 후예 '카니바스'라고 이름 붙이고 '카니바스'를 '카리베스'로 혼돈하여 카리브 해라고 이름 지었다.

컬럼버스는 카니바스족이 사람을 잡아 먹는 사람들이라고 보고했는데 신화와 전설에서만 나오는 식인종이 이 세상 한구석에 실제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유럽 전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었다. 항해술이 발달하고 식민지 쟁탈전이 가속화되면서 각국의 선교사와 인류학자들은 가는 곳마다 식인종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논문으로 책으로 출판했다. 오래지 않아 식인 풍습은 미개인으로서 꼭 갖추어야 하는 '스펙'으로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다.

과연 식인종은 존재하는가? 한 인류학자가 수많은 기록들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식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식인종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은 모두 '카더라' 통신이었다는 것이다.

식인종 이야기는 통상 그 이웃의 경쟁 부족원에게서 흘러나왔다. "우리는 그런 짓 안 하지만 숲 저쪽에 사는 놈들은 무지막지한 식인종들이야.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나도 잡아먹힐 뻔 했는데 용감히 빠져 나왔지."

그러나 인류학자 아무도 자신이 직접 본 경험을 기록한 사람은 없었다. 컬럼버스에게 카니바스가 식인종이었다는 정보를 전해준 것도 이웃 부족 아라와크족이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끔찍한 식인 행위는 열대우림의 원주민들에게도 끔찍한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잘라서 말하면 식인 행위를 밥먹듯이 하는 인류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존의 야노마모족은 재를 넣은 죽을 나눠 마시면 죽은 조상과 하나가 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상징적인 믿음은 성찬식에서 기독교도들이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믿음과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의 일부를 내 안으로 섭취하므로써 그와 하나가 된다는 믿음이다.

우리에게 패륜이라 여겨지는 식인 행위는 다른 문화에서도 패륜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상징적으로나마 행해지는 식인 풍습이 있다. 미개인이든 현대인이든 우리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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