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새벽 1시쯤(현지시간) 파키스탄 북부의 가지 공군기지에서 4대의 미군 헬기가 이륙했다. 헬기에는 미군 엘리트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대원과 중앙정보부(CIA) 및 파키스탄 군정보국 요원을 포함 모두 20여 명이 타고 있었다. 이미 파키스탄에 들어와 있던 네이비실 대원들은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군사.휴양도시 아보타바드의 저택과 비슷한 구조의 건물에서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 훈련까지 마쳤다.
새벽 1시30분쯤 아보타바드의 은신처로 미군 헬기들이 날아오자 빈 라덴의 경호원들은 지붕 위에서 로켓포와 자동소총을 발사하며 격렬히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헬기 1대가 추락했다. 방탄복을 입은 네이비실 대원들이 건물 진입을 시도하자 경호원들은 격렬히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미군 최정예 특수부대원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호원들은 하나 둘 총을 맞고 쓰러졌다.
저택의 가장 은밀한 방에 숨어 있던 빈 라덴은 무기를 들고 저항하다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통신 등은 미 특수부대의 임무가 빈 라덴 생포가 아닌 사살이었다고 보도했다. 연방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총격전 과정에서 빈 라덴의 아들 1명을 포함해 남자 3명과 여성 1명이 사망했다"며 "사망한 여성은 빈 라덴의 인간방패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약 40분간 이뤄진 작전은 결국 빈 라덴의 사살로 끝이 났다. 네이비실은 빈 라덴의 시신 확인이 끝나자마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션 컴플리트(Mission Complete.작전 완료)"라고 보고했다. 이상은 ABC방송이 전한 작전 상황이다.
연방정부가 빈 라덴의 은신처에 대해 '감'을 잡게 된 시점은 지난해 8월쯤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CIA는 이때 ISI를 통해 빈 라덴이 산악지대가 아닌 아보타바드의 3층짜리 저택에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수개월의 확인 끝에 올 2월 이 저택이 빈 라덴의 은신처라고 결론지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수차례의 국가안보팀 회의를 거쳐 지난달 29일 빈 라덴 사살작전을 승인했다.
전세계의 시선이 영국 로얄 웨딩에 쏠려있을 때였다.
등잔 밑 어두웠던 호화 은신처 산악지대 동굴 칩거 예상 깨고 수도 인근 휴양도시서 숨어지내
등잔 밑이 어두웠다.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는 산악 지형의 동굴이 아니었다. 그는 대담하게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50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 아보타바드에 있었다.
집도 산악지대의 험한 동굴이 아닌 13피트 높이의 콘크리트 담에 둘러싸인 가격 100만 달러 상당의 3층 대저택이었다. 파키스탄 육군사관학교에서 약 0.3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연방정부 관계자는 ABC방송에 "저택 주변에서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태웠으며 저택엔 텔레비전 인터넷 전화가 없었다"며 "2005년 지어진 이 저택엔 출입구를 보기 힘들었으며 창문도 매우 높은 곳에 달려 있어 누군가가 숨어 있다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빈 라덴은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킨 후 그해 11월부터 아프간 산악지대인 토라보라의 동굴에 숨어 있다가 12월 미군이 토라보라를 급습하기 직전 몸을 피한 뒤 행적이 묘연했다.
지난해 10월 CNN방송은 NATO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빈 라덴이 알-카에다 파키스탄 북서변경의 일반 주택에서 파키스탄 군정보국(ISI)과 부족민들의 비호 아래 편안하게 지낸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부통령은 지난해 12월 NBC방송과 인터뷰에서 "빈 라덴과 그 동료들이 아프간.파키스탄의 산악 지역에서 지낸다는 것이 우리 정보 당국의 일치된 견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 당국이 빈 라덴을 비호해오다 최근에야 그의 소재를 미 당국에 알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 오사마 빈라덴 사살_수장_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