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세계사는 지난 2001년 9월 11일 뉴욕, 워싱턴 D.C. 등지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9.11 테러 이후와 이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슬람 무장 테러 단체인 알 카에다 조직원들에 의해 납치된 2대의 여객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향해 차례로 돌진, 거대한 빌딩이 무너지던 순간은 미국인 뿐 아니라 지구촌 모두에 큰 충격을 안겼다.
붕괴된 건물 더미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먼지를 덮어쓴 채 비명을 지르며 거리를 달려가던 이들의 표정과 건물 잔해를 수색하던 소방관들의 얼굴. ‘그라운드 제로’에 놓여진 수 천 송이 꽃들과 희생자 수 천 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던 살아남은 자들의 비통한 조사(弔辭)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9.11 테러 이후 현대사는 격동을 쳤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은 영국 등과 함께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나서, 길고 긴 아프간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알 카에다 등 무슬림 무장 테러 조직들 간의 싸움은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다.
9.11 테러는 국가와 정치 세력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쳤다.
9.11 테러 이전까지 그 다지 어렵지 않았던 미국으로의 이민은 한층 까다로워졌다. “공항에서 영주권을 받고 입국했다”는 1980년대 이민자들의 경험담은 9.11 이후 미국 이민자들에게 동화 속의 이야기로만 들린다.
9.11 이후의 공항 이용은 무척 번거롭고 괴로운 일이 됐다. 수 시간 씩 줄을 서야 하는가 하면 불쾌한 몸수색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검색대에서 깜짝 놀라 치약이나 물병을 버리고, 심지어 액체가 든 기념품을 빼앗기고 나면 여행의 즐거움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지구촌의 삶을 9.11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은 테러의 총지휘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1일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그의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정의가 실현됐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 이후 미국 전역은 환호의 물결이 일었다. 백악관과 9.11 테러 현장인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수 많은 이들이 모여 성조기를 흔들며 ‘테러와 악의 원천’인 빈 라덴의 죽음을 반겼다.
시카고 트리뷴은 2일자서 이례적으로 1면부터 5면까지 이번 사건을 보도했다. CNN을 비롯한 주요 언론들은 1일 밤부터 2일 하루 종일 빈 라덴의 사망과 관련된 뉴스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빈 라덴의 사망 이후 세계는 어떻게 될까.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세상은 더욱 안전해지고 더 나은 곳’이 될까.
미국은 이번 작전의 성공으로 미국에 대한 공격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테러 조직에 대한 분명한 선언과 경고를 하는데 성공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빈 라덴의 막대한 자금력이 사라지면서 알 카에다는 일시적으로 세력이 약화되겠지만 이슬람-유대교-기독교가 얽힌 종교적 갈등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아랍)-미국으로 나눠진 정치적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테러 집단의 등장과 이들의 활동을 완벽하게 막기는 힘들 것이다. 더욱이 최근 심화되고 있는 세계 각국의 빈부 격차와 경제적 갈등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이 이슬람의 폭력성 때문인 지, ‘문명의 충돌’(사무엘 헌팅턴) 탓인 지, ‘미국의 패권주의’(아브람 노암 촘스키)에서 비롯된 것인 지 단순하게 규정짓기는 힘들다.
다만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이 더 이상의 테러와 보복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무슬림의 옛 땅인 고대 바빌로니아 지역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조차도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을 허용했지만 가해자측의 재복수는 허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