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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나다'와 '들다'의 미학

New York

2011.05.1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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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한국어교육
우리말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민족의 사고를 알 수 있다. 요즘 며칠 동안 나는 계속 ‘나다’와 ‘들다’라는 단어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 ‘나다’는 ‘나가다’의 의미와 ‘생기다’의 의미가 있다. ‘들다’는 ‘들어오다’의 의미이다.

나다와 들다가 합쳐진 단어로는 ‘나들이’가 있다. 주로 외출이나 소풍을 의미할 때 쓰는 말이다. 외출이라고 할 때 한자로는 ‘나가다’의 ‘출(出)’만 있는데, 나들이의 경우에는 나갔다가 들어온다고 표현하는 것이 흥미롭다.

우리는 늘 나갈 때 들어올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이미 지적한 분들이 있지만,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세요, 갔다 올게, 잘 갔다 와’ 등의 표현에서 정겨움이 느껴지는 것은 항상 돌아옴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에는 이와 같은 인사표현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나다와 들다는 반대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 말들을 잘 들여다보면 한국인의 사고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나다와 들다가 쓰이는 예로는 ‘생각이 나다’와 ‘생각이 들다’가 있다.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나는 것’은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이고, ‘드는 것’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했을 때나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들은 ‘생각이 나게’ 되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 났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나서 느낌이 생기는 것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라는 표현에서는 외부의 영향이 느껴진다.

나다와 들다가 정확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병’에 관한 표현이다. 병은 나기도 하고,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병이 나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 병이 드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 ‘향수병’이나 ‘상사병’은 병이 나는 것이다.

누구를 너무 그리워하여 내 속에서 생기는 병이 상사병이 아닌가? 한편 ‘전염병’이나 ‘감기’는 병이 드는 것이다. 어떤 일을 고되게 했을 때, 자기 능력 이상으로 일을 했을 때 ‘병이 났다’고 한다. 병이 나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의 책임이다.

자기 몸의 한계를 지키지 못해 생기는 병이기 때문이다. ‘저러다 병 나겠네!’하고 걱정하는 말은 항상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계하는 것이다. 병이 드는 것은 외부의 요인이지만, 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일은 나에게 달린 것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의사 선생님께서 항상 손발을 청결히 하고,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스트레스를 쌓이지 않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생각해 보면 들다가 쓰이는 장면이 참 많은데, 우리의 사고를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흥미롭다. 우리는 ‘물이 들다’라고 표현하고, ‘철이 들다’라고 표현한다. ‘단풍이 물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나뭇잎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색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햇살과 바람과 비를 만나면서 서서히 바뀌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철이 드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모름지기 사람은 계절이 바뀌면 계절이 바뀌는 대로, 그 순리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리 살지 않으면 철을 모르는 것이다. 어찌 보면 병이 나고 드는 것도 철을 모르고 한 일 때문일 것이다.

철모르고 하는 행동들은 다 후회가 되는 법이다. ‘철’은 순리대로 사는 법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내 몸 안에 들어온다. 철이 드는 것이다.

나다와 들다가 나오는 표현들을 만나면, 왜 그런 표현들을 쓰게 되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러면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 것이다. 잠이 들다, 마음에 들다, 힘이 들다, 정신이 들다 등 표현은 왜 그렇게 쓰게 되었을까? 빛이 나다, 맛나다, 힘이 나다, 기운이 나다 등은 왜 그렇게 쓰게 되었을까? 오늘 아침 궁금증을 한 아름 안겨 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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