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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 혼자 자동차 문틀에 머리 찧기도

Los Angeles

2011.05.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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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군대 생활을 3년 가까이 했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 기간 동안 후배 병사들에게 딱 3번 주먹을 날렸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3사람에게 각각 1대씩 총 3대를 때렸다. 내 자신은 선배들로부터 그보다 서너 배쯤은 더 맞은 것 같다.

학창 시절 주먹다짐을 꽤나 많이 한 편이지만 자식을 키우면서 물리적 폭력은 그다지 자주 행사하지 않았다. 내 자식들을 상대로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에 작심하고 매를 들었던 것은 딸과 아들에 대해 각각 한 차례였던 것 같다.

특히 지금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을 놀이용 하키 채로 두들겨 팼을 때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여자 동급생을 못되게 놀렸다는 사실을 알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방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매 타작을 시작했다. 아들을 엎드려 뻗치게 한 뒤 두툼한 하키 채가 거의 부러질 때까지 아들의 엉덩이를 팼다.

그리고 나서 아들을 무릎 꿇게 한 뒤 같은 하키 채로 내가 내 종아리를 피가 튀길 때까지 때렸다. 안방에서 훈육이라는 명목 아래 이런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밖에서는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아이 엄마 이렇게 셋이 사정없이 방문을 두들기며 호소를 쏟아내고 있었다. "아범아 이제 그만 둬라" "여보 이제 됐잖아요" "당장 문 열어라"며 울부짖다시피 했다.

그 후로는 아이들의 몸에 손을 댄 적은 없는 것 같다. 딸과 아들은 각각 한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때 미국으로 왔다가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돌아갔는데 그 사이 육체적 폭력은 전혀 행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내 스스로 반성도 있었지만 남의 나라 땅에서 엄마도 없이 사는 애들을 때린다는 게 인정상 내키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나이 오십 줄에 맡아 기르기 시작한 여자 조카 아이 햄달새에게 손을 댈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매를 대지 않기로 사전에 결심한 게 아니라 회초리는 애초부터 아예 양육 옵션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햄달새가 여간 해서는 혼낼 일이 없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란 뜻은 아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제 집에서 자랄 때 종종 매를 버는 짓도 하는 그 나이 평균 정도의 아이라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쨌든 햄달새는 그 나이 내 자식들보다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조금 더 많이 했다. 한치 건너 두 치라고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에 햄달새의 잘못이 눈에 더 자주 들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러 주변 상황들이 햄달새로 하여금 모범생활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미국이라는 관습이나 행동 요령 등이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도 그런 요인일 것이다. 게다가 나와는 영 딴판인 양육 철학을 갖고 있는 저희 엄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햄달새 입장에서는 할배 삼촌의 양육 방식에 적응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이런 여건 때문에 햄달새를 키우면서 성질 급한 나로서는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 불쑥불쑥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실제로 화를 억누르지 못해 예를 들어 혼자서 자동차 문틀에 머리를 몇 차례 찧는 일도 있었다. 헌데 다행인지 또래에 비해 상황 판단력이 남다른 햄달새는 할배 삼촌의 머리 꼭대기에서 앉아있다는 듯 내가 속에서 열불이 날 때면 그때그때마다 적절히 대처하며 삼촌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재주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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