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의사 (Dr. Death)라고 알려졌던 인물이 있다. 잭 케보키언(Dr. Jack Kevorkian. 1928-2011)이라는 사람이다. 의사라면 사람을 살리는게 주임무이지만 케보키언은 소생가망이 없는 말기환자의 안락사를 도와준 의사이다. 1952년에 미시건 주의 한 의과대학을 졸업했는데 한국전에도 군의관으로 참전한바 있다.
1958년에 그는 사형수들을 안락사시키고 그 시신을 의학실험용으로 사용하자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여 최초의 파문을 일으켰다. 오래전부터 죽음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기이한 행동이나 학설을 주장하면서 동료로부터 죽음의 의사라는 닉네임을 얻게된다. 의사로서의 삶은 순조롭지 않았다. 동료들과의 마찰이 잦았던 탓이다.
1980년 중반부터는 안락사가 그의 주 관심사가 된다. 급기야 약 45달러를 들여 ‘자살기계’를 만들었고 1990년부터 1998년에 걸쳐 130명의 말기환자가 스스로 숨을 거두는 것을 도왔다. 1990년부터 여러번 본거지인 미시간주에서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자살자체를 금하거나 자살을 돕는것을 금지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아 풀려난다. 하지만 91년도에는 그의 의사자격증이 박탈된다.
케보키언이 자살돕기를 계속하자 미시간 주는1998년에 자살을 돕는 행위를 불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겼다. 그해 말에 그가 적극적으로 안락사를 도운 사건이 일어난다. 그때까지는 케보키언의 도움을 받으며 환자들 스스로가 약물을 주입하였는데 이때는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주입할수 없었다. 그래서 환자의 동의를 얻은 케보키언이 직접 약물을 주입했다.
결국2급살인죄로 25년형을 받고 수감된 그는 8년여의 형을 마친후에 2007년에 가석방이 되었다. 일체의 자살조력이나 안락사관련 강연, 관련사회활동을 하지않는다는 조건부 가석방이었다. 가석방후 병고에 시달렸던 그는 며칠전인 6월 3일에 논란으로 가득찼던 일생을 마쳤다.
한 언론사 (Detroit Free Press)의 조사에 의하면 그가 안락사를 도와준 ‘말기’환자의 60%가까이는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는 근거가 확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많은 경우는 환자본인이 의식불명이었고 그가 한 상담이라는 것도 전화상담이나 가족이나 친지와의 간단한 미팅에 불과했다. 전문의의 의견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며 환자의 의료기록을 조사하는 케보키언의 방법도 일관성이 부족했다.
심지어는 사후 부검결과 전혀 병의 흔적이 없었던 경우도 최소 3사례가 있었다고 하고 그와 환자가 만난지 하룻만에 환자가 안락사한 경우도 20여번이 된다. 불치병의 말기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그의 의도는 이해할수있다해도 130명의 자살조력 케이스중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만큼 졸속으로 결정이 내려진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마라화나(대마초)의 의료용도 사용허가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도 원래 말기환자가 겪어야하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자는 인도주의적 발상이다.
안락사에는 적극적인 안락사와 소극적인 안락사가 있다. 전자는 약품등을 사용하는 경우이고 후자는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또 환자본인의 의지여부에 따라 자발적 안락사가 있고 비자발적 안락사로 나뉜다. 후자는 환자가 의식불명인 경우에 친지가 결정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중 자발적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라고 보기도 한다.
사고로 식물인간의 상태가 된 사람의 경우엔 누가 과연 결정을 내릴수 있겠는가? 그들의 의식은 깨어있는가 아닌가? 생명은 소중하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상태를 기약없이 끌고 가는것이 과연 인간적인가? 살 권리와 죽을 권리의 문제엔 정답이 있을수 없다. 닥터 케보키언은 참으로 어려운 논점을 전면으로 가져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