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섭리로 여기까지…가진 것 모두 내어 드릴 것"
사제서품 받은 진호석 신부
진호석 신부(프란치스코 39)는 지난 4일 '천사의 모후 대성당'에서 있었던 LA대교구 사제서품식에서 탄생한 한인 사제다. 신품성사를 받은 6명 중에서 진 신부를 포함해 3명의 한인 사제가 동시에 서품을 받은 것은 처음있는 일이라 화제가 됐다.
진 신부는 7월 1일부터 정식으로 첫 부임 성당인 웨스트 코비나의 성 크리스토퍼 미국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을 시작하게 된다.
"하느님이 각 사람을 사제로 부르시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한 것 같아요. 저 역시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진 신부는 친가쪽이 구교집안으로 1남 2녀의 외아들이다. 고등학교때 신부가 되고 싶다는 말을 어머니에게 꺼낸 적이 있다.
아들이 하나라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힘든 길이니 잘 생각해 보고 하고 싶으면 하라"는 담담한 대답에 어린 마음에 되레 겁이 나서 그대로 접었다. 충북대학교 건축과 90학번으로 입학하여 군복무 마치고 96년 졸업하면서 서울에 있는 한 건축설계 회사에 입사했다. 8년 동안 잘 다니던 중 2004년 8월 LA지사 근무를 나오게 됐는데 이것이 인생의 대전환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로부터 딱 1년 뒤인 2005년 8월 세인트 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됐기 때문이다.
"업무 차 미국에 왔다가
일년 만에 신학생 길로
사제의 삶, 하느님 뜻대로"
"미국 처음 와서 미사를 드리려고 찾아 온 것이 바로 성 그레고리 성당이었어요. 청년반에서 내 소개를 하는데 놀란 것이 나도 모르게 까맣게 잊고 있던 한때 신학교에 가려 했다는 말을 꺼내는 거에요. 그리고 이젠 나이들어 불가능해졌다는 말까지 하는 나를 보고 놀랐지요." 더욱 놀랐던 것은 그 말에 옆에 있던 신부님이 "미국에서는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청년반은 물론 그레고리 성당에서는 '예비 신학생'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주임신부인 정현철 신부님을 중심으로 성당 전 신자가 똘똘 뭉쳐서 신학교에 입학하는데 필요한 모든 도움을 적재적시에 서로 연결시켜 주었다.
이렇게 하여 아무 연고 없이 미국에 업무차 온 지 꼭 일년 만에 전혀 다른 진로인 신학생의 길로 접어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적처럼 시작된 신학생의 생활은 결코 녹록지만은 않았다. 33살의 나이에 미국생활 일년차의 영어실력으로 철학과 신학 공부를 따라가야 했고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도 배워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영적인 내면 상태를 영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신학교 교수 신부님과 신학생들 사이에서 제 별명이 '불 꺼지지 않는 방'이었어요. 아무래도 당장 영어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남들이 잘 때 공부를 했어요. 다들 괜찮겠냐고 묻는 게 인사였지요(웃음)." 그러나 더 힘들었던 것은 가족이 모두 한국에 있기 때문에 혼자서 힘든 신학교 생활을 해야 하는데서 오는 인간적인 고독감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기도를 더 하게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하느님 가까이 더 갈 수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 섭리였다는 말 밖에는 다른 표현이 없어요. 여기까지 온 것도 내가 아닌 하느님이 하신 일이니 앞으로 사제로 사는 것도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하는 마음 뿐입니다."
김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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