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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 리얼리즘 연극과 심리학

New York

2011.06.2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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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구/VP Stage NY 대표·국악인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홉(1860∼1904)은 '세자매''갈매기''바냐 아저씨''벚꽃 동산' 등 근대 희곡 사에 불멸의 작품을 남겼으나, 사실은 희곡 보다는 중·단편 소설을 더 많이 썼다. 체홉은 소설 '변덕쟁이'를 통해 당시 사교계의 환상에 젖어 사는 여 주인공 올가 이바노브란 인물을 만들어 냈다. 그를 통해 당시 지식인 사회의 허영을 쫓는 인물을 사실적이고도 희극적으로 풍자했다.

작가의 위트뿐 아니라 주인공 올가의 감정 변화를 보고 있자면 코미디중의 코미디를 보는 듯 하다. 그런데 만약 소설 속의 올가 같은 이가 실제로 주변에 있다면 그렇게 웃을 수 만은 없을 게다. 올가는 감정 기복의 정도를 넘어 양극단을 오고 가는 조울증 같은 증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체홉은 마치 의사라는 그의 직업이 작품에 투사 된 듯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수술대 위에서 인체를 해부하듯 펼쳐 놓는다.

체홉을 얘기 할 때면 러시아 리얼리즘 연극의 창시자 스타니슬라브스키(1863∼1938) 또한 빼 놓을 수 없다. 일명 ‘메서드(method)’나 ‘시스템(system)’이라 불리는 연극 이론이 그로부터 출발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학계와 공연 현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존의 연기가 하나의 정형화된 매뉴얼에 맞추어진 외부로 보여지는 행동에 치중했다면, 스타니슬라브스키는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행동이 주변 환경과의 연관 속에 외부로 표출된다는 연기 방법론을 정립하게 된다. 그 과정에는 인간의 심리와 상호 관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체홉의 희곡이 크게 공헌 했음이 분명하다.

이 두 사람이 극작가와 연출가로 모스크바예술극장을 통해 근대 리얼리즘 연극의 새로운 시대를 열 때, 또 다른 인문학계의 혁명이라 불리울 수 있는 이론이 유럽에서 출현하였으니 프로이드(1856∼1939)의 정신분석에 관한 이론이다. 그는 인간의 행동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성욕과 관련된 ‘리비도(Libido)’ 라는 이론을 주장한다. 그의 이론의 타당성을 떠나 그로부터 근·현대 정신분석에 관한 논리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프로이드의 심리학 이론에 등장하는 잠재의식이나 욕망 같은 개념들이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극이론에도 등장하고, 간혹 두 사람의 이론 사이에 공통분모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스타니슬라브스키는 생전에 프로이드를 알지 못했다 하니 그저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 만으로 두 사람을 연결 시킨다는 건 다소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단지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정신분석학이 결국은 인간의 내면에 관한 성찰이고 그로부터 파생한 인간 행동과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기에, 이를 무대 위에 형상화하는 스타니슬라브스키식 연극과 연구 대상에 있어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런 배경이 현대에 연극을 통한 심리치료(theater therapy)의 계기가 되기도 했을 게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가 정리한 ‘멜랑콜리아(melancholia)’라는 개념이 현대 의학계가 정의한 우울증의 증상과 비슷한걸 보면, 올가 이바노프와 비슷한 정신병리 현상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인터넷을 매개로 개별적이고 간접적인 인간관계가 형성 된 현대인의 정신세계는 체홉이나 히포크라테스 시대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해졌을 게다. 어찌 보면 물질문명에 가로 막혀 오히려 정신세계는 과거보다 더 기형적으로 변했는지도 모른다. 병들어 가는 정신세계를 위해 사람 냄새 나는 연극 한편이나 인문학 고전이 약이 될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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