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공부 후 충만한 표현욕구 따라 작가 변신 난자 세포증식 등 생명현상을 창조적으로 형상화
작가 이동희는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나 극동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2006년에 미국으로 유학 와 롱아일랜드대 서양화과를 졸업했고, 현재는 이 대학 대학원을 다니면서 학업과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이동희는 뉴욕주 오클랜드가든에 살고 있는데, 작품활동과 함께 미술문화의 대중화와 사회적 참여에도 관심이 많아 현재 예감 아트갤러리 부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이동희는 그 동안 주로 뉴욕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고, 2009년에는 롱아일랜드대에서 수여하는 오말리상을 받았다.
이동희는 어릴 때부터 늘 그림을 그리면서 성장했다. 대학에 갈 때도 어떤 학과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미술대학에 진학해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는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도 순수 미술에 대한 그리움을 떨치지 못했다. 이동희는 이를 잘 알고 있는 모친 등 주위의 도움으로 유학을 결심하게 됐고, 결국 미국에 와서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이동희의 작품은 다양한 재료,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지만 세 가지 정도의 형식이 눈에 띈다. 하나는 전통 회화처럼 평면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달걀 등의 오브제를 배치하는 것이다.
그의 회화 작품에는 여성의 자궁 내에서 탯줄에 매달린 채로 성장하고 있는 태아의 모습을 그려지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에는 달걀 등을 기하학적인 구성에 따라 층층이 쌓아 올려져 있다. 이런 작품들에는 이동희가 추구하고 있는 생명의 깊은 의미와 성찰이 담겨져 있다.
또 한 가지는 3차원 조각 작품이다. 이동희의 조각 작품에는 원형의 공에 여러 가지 장식과 같은 오브제가 붙어 있다. 어두운 색의 둥근 공은 우주의 깊은 심연을 드러내듯 보는 사람들에게 신비로움을 준다. 이동희는 이러한 작품에 생명의 초기형태인 난자나 원형질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이동희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쉽게 지나쳐 버리는 인간 생명의 근원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또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최근 들어 이동희는 미술의 전통 형식인 회화와 조각에서 한 번 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존의 회화와 조각 작품에 펼쳐졌던 조형요소를 전시장 벽 등에 질서 있게 늘어 놓거나 매다는 설치작품들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설치작품이 회화나 조각보다 형식이나 내용에서 우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점점 더 고립되고 있는 미술문화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는 운반과 전시, 보존에 용이한 회화와 조각 작품이 형식적인 우월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작가들은 회화와 조각이 갖고 있는 점유(영향) 공간이 광활한 시각 영상문화에 비해 상대적 열세임을 느끼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미술작품의 점유(영향) 공간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회화와 조각을 떠나 설치작품으로 옮겨가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동희의 설치작품은 형식적으로 회화와 조각과 다를지라도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동어반복적으로 기존의 작품들과 유사한 면을 갖고 있다. 다만 설치작품이 주위 공간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배하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동희의 설치작품은 그가 추구하는 생명의 근원과 실상, 아름다움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이동희는 미국에 유학 온 뒤 최근까지 여러 해 동안 생명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이처럼 생명의 근원과 실상, 아름다움을 주제로 작품을 하고 있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작가로서의 사유를 통해 구축한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과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바라 본 생명의 실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은 생명의 시작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인간 생명의 시작은 생존을 위한 경쟁을 통해 존재한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탄생 과정의 아름다움은 마치 우리 삶의 드라마를 연상케 하고 서로 경쟁해야 살아남는 우리 삶과 많이 닮았다. 인간의 난자는 인체에서 유일하고 완벽한 구면 세포이며, 정자와 수정하여 같은 종의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유성생식을 한다. 나는 이러한 인체의 신비스러운 과정을 우리의 삶과 연결시켜 생명창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려 한다.”
이동희는 인간의 생명과 그의 탄생 등에서 발견되는 실상과 느낌 등을 뛰어난 조형 감각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셈이다. 이동희는 생명의 실상을 미술이라는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창작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내 그림에 나오는 상호 연결된 연속적인 둥근 원형의 모습은 난자를 상징한다. 각각의 원형은 추상적 패턴과 여러 가지 형태를 갖고 있다. 이것들은 광이 나고 유연한 성질을 갖고 있는 핫 글루(Hot Glue) 재료를 사용해 신중하게 그려지고 만들어진다. 이러한 형태들은 회임과 세포증식을 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크고 작은 수 백 개의 원들은 이러한 생명 현상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동희는 생명 현상을 추적하면서 한편으로 세부적으로는 우리의 생식 능력이나 육체와 정신의 신비감을 표현하고 있다. 롱아일랜드대 미술대학원 학장이며 작가인 이승은 이동희의 그림 이면에 담긴 정신성을 이렇게 풀이했다.
“이동희는 미술의 전통 기법과 현대적인 사유를 매우 기발한 방법으로 그리고 있다. 그의 그림은 그가 걸어 온 인생과 그가 체험한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미학을 하나로 통합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동희는 생명의 문제를 다루는 자신의 작품이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편으로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이 미치기를 바라고 있다. 작가 내면의 세계에 깊이 침잠하면서도 이러한 창작 여정이 이 사회를, 내 이웃을 더 행복하고 밝게 만드는데 기여하게끔 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나는 처음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현대사회의 공허감과 스트레스 등 인간을 피폐화시키는 사회현상을 비판하는 그림을 그렸다. 자살과 낙태, 총기 폭력, 약물중독 등등. 나는 이러한 안타까운 사회현상에서 나타나는 공통의 문제점은 자존감 결여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의 소중함 또는 다른 사람들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현대를 사는 미술가로서 이러한 사회현상이 개선되도록 도움이 되는 작품을 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