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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에서] 시간사냥

Los Angeles

2011.07.0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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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 목사/LA연합감리교회
오래된 짐들을 정리하다가 '결혼예식'이라고 쓰여진 촌스러운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제 것인 것 같았습니다. 묘한 궁금증을 가지고 테이프를 틀어보니 탱탱한 젊음을 가진 '과거의 낮 익은 젊은이'가 상기된 표정으로 결혼식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상대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여자'의 젊은 시절 모습입니다. "그래 우리 마누라가 저렇게 생겼었지!"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촌스러운 모습에 어색하기만 한 몸짓이 영락없는 우리 부부의 젊은 자화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이 시들어 버렸는데 과거의 영상 속에 사로잡힌 파릇파릇한 두 부부는 조금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희희낙락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간 과거는 대부분 흐릿한 기억 속으로 잊혀져 버리는데 용케도 카메라 속에 사로 잡힌 과거의 두 부부는 영원히 늙지 않고 싱그럽게 웃고 있었습니다. 과거가 '영원한 현재' 속에 사로 잡힌 것입니다. 미래에도 그들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영원한 현재를 살아 갈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시들어 간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서글퍼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토록 간직하고 싶어합니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담습니다. 연인들은 돌맹이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넣으며 사랑이 영원할 것을 소망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주름살 제거 화장품'을 바르고 보톡스 주사를 맞고 칼로 자르고 톱으로 썰면서 성형수술이라는 몸짓 절규를 통해 '시간'과의 처절한 싸움을 버립니다. 소위 '시간사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람 같은 시간을 붙잡고 싸우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이 시간을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사람을 사냥합니다. 소중한 기억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물을 몇 조각 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싸운 싸움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시간에 사로 잡힌 사람들'과 '시간을 사로잡은 사람들'입니다. 시간에 사로 잡힌 사람들은 어느 한 순간부터 과거의 이야기만 되풀이합니다. 그것이 아픔의 기억이었든지 아니면 화려한 영광의 추억이었던지 상관없습니다. 그 당시에 받은 충격이나 희열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그 상황을 늘 곱씹으며 과거에 매여 살아갑니다. 아주 재미없는 앵무새와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사로잡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항상 새롭습니다. 대화의 내용이 항상 진취적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노인 중의 한 분은 이미 일흔 중반의 연세를 지나면서도 만나면 항상 신선합니다. 이 분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과연 이분이 노인 맞나 싶을 정도로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그 분과 있으면 제일 먼저 그 분이 어떤 과거의 삶을 살았을지 훤히 보입니다. 시간을 사로 잡은 분입니다.

순간순간 주어지는 시간은 최선을 다해 살아야 다음 단계의 시간을 새롭게 맞을 수 있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 시간을 지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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