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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연약한 자가 드리는 감사

Los Angeles

2000.11.1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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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약하게 태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한때 연약함을 원망하고 연약함 때문에 괴로했다. 그러나 쓰러질 듯 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온 오늘 내겐 연약함이 가장 큰 감사의
조건이 되었다. 생각을 바꾸면 과거가 새롭게 태어난다.

어느날 연약함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서 나의 모든 과거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하나님은 과거의 나의 연약함을 통해 나를 변화와 성숙으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약함은 죄가 아니다. 연약함은 연약함일 뿐이다. 우리는 연약함 때문에 자기 연민에 많이 빠진다. 연약함 때문에 가슴아파하고, 연약함을 원망하기도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강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때로는 그들을 향해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분노를 품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연약함도 강함도 아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연약함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연약한 사람이 누리는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해석의 문제요, 깨달음의 문제다.

하나님의 말씀은 '연약함은 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것'임을 가르쳐 준다. 역설적인 진리다. 예수님은 "연한 순"(사 53:2)으로 오셨다. 연한 순은 비록 연하지만 생명이 있다. 연
한 순에는 엄청난 가능성이 담겨있다. 변화의 가능성, 성장의 가능성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연한 순으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가능성의 본체이셨다. 부드럽고 나약하지만 생명을 소유한 예수님을 어느 누구도 쓰러뜨릴 수 없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다. 죽음도 파괴하지 못하는 생명력이 연한 순속에 담겨 있었다.

연한 순은 유연하다. 참으로 강한 것은 강한 것이 아니라 유연한 것이다. 유연하다는 것은 적응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실력은 적응능력이다.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고, 어떤 시대에도 적응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유연한 사람에게 있다. 적응 능력이 있는 사람은 환경을 초월한다.

사도 바울은 약했다.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기도 드렸다. 주님은 그의 기도에 거절하심으로 응답하셨다. 혹독한 은혜이긴 하지만 거절하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그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서 온전해 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오히려 약한 것을 기뻐하고 자랑했다(고후 12:9, 10). 바울의 연약함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은총의 수단이었다. 그는 연약한 사람이 누리는 행복을 누렸다.

연약한 가운데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던 작가중에 미후라 아야꼬가 있다. 그녀의 몸은 병집이라고 할만큼 그녀는 많은 병을 앓았다. 척추결핵에서 시작해서 암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통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연약함을 감사의 조건으로 삼았다. 미후라 아야꼬는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뵙지 못할 성안이 있다. 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 조차 없다"고 말했다.

연약함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말라. 절망하지 말라. 하나님은 모든 자유를 인간에게 주셨지만 절망할 자유는 허락지 않으셨다. 오직 우리는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 당신을 쓰러뜨리지 못한 연약함은 오히려 당신을 강하게 만들 것이다. 연약함을 행복의 수단으로 삼으라.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로 삼으라. 오히려 연약함 때문에 누리게 된 행복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강준민 <로고스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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