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는 도박사보다 안전주의 제작자들이 많은 것일까? 신작을 극장에 거는 것은 위험한 사업이다. 할리우드 영화 각색이나 추억의 팝송을 리사이클한 ‘주크박스(Jukebox) 뮤지컬’, 그리고 리바이벌이 주류를 이루는 브로드웨이에 참신한 창작 뮤지컬이 등장했다. ‘북 오브 몰몬(The Book of Mormon)’은 진정 도박이었다. 그러나 이 ‘오리지널’ 도박은 노다지의 블록버스터로 판명됐다.
스타도, 인기 팝송도 없고, 몰몬교에 시비를 거는 ‘브랜드 뉴’ 뮤지컬은 2011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대본·오리지널 작곡·연출·여우조연·오케스트레이션·무대디자인·조명·사운드디자인 등 9개 부문상을 휩쓸며 ‘뮤지컬의 클래식’으로 공인됐다. 까탈스럽기로 정평이 난 뉴욕타임스의 비평가 벤 브랜틀리는 ‘21세기 최고의 뮤지컬’‘천국(heaven)’이라며 아낌없이 찬사를 보냈다. 도대체 ‘북 오브 몰몬’에 무엇이 있기에.
◆황금 트리오의 만남=뮤지컬 ‘북 오브 몰몬’ 탄생의 주역은 브로드웨이 저 멀리서 왔다. 도발적인 풍자로 유명한 TV 만화 시트콤 ‘사우스파크’의 공동 창작자 트레이 파커와 맷 스톤은 오랫동안 몰몬교와 뮤지컬에 심취해왔다. 콜로라도대학 동창인 이들은(동성애 커플은 아님)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즉 ‘몰몬교’를 소재로 종교에 대한 전반적인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이들이 선택한 작곡 파트너는 히트 뮤지컬 ‘애브뉴 Q’로 토니상을 거머쥔 로버트 로페즈. 이렇게 파커-스톤-로페즈의 ‘드림 트리오’가 구성됐다.
제작비도 당초 1100만 달러에서 900만 달러로 줄일 수 있었다. 이 ‘검소한’ 뮤지컬은 대자본의 새 뮤지컬 ‘스파이더맨: 어둠을 꺼라(Spiderman: Turn off the Dark)’ 제작팀을 창피하게 만들었다. ‘스파이더맨’은 브로드웨이 사상 최대 제작비인 6500만 달러에 블록버스터 ‘라이온 킹’의 줄리 테이무어와 수퍼스타 록그룹 U2의 보노와 엣지를 동원한 화려한 팀이었다. 그러나, 서커스같은 공연에서 부상자가 속출했고, 불치의 빈약한 스토리로 마침내 테이무어는 중도에 하차하는 치욕을 당한다. 개작에 개작을 거듭하면서 ‘스파이더맨’은 결국 브로드웨이 최장기 프리뷰의 기록을 세운 뮤지컬이 됐다. 토니상 시상식 이틀 후에 공식 개막은 했지만 개작판에도 여전히 악평이 쏟아졌다. 저주받은 뮤지컬 ‘스파이더맨’이 어둠 속에서 악몽을 꾸는 중이지만, 천상의 뮤지컬 ‘몰몬’은 저 푸른 흥행의 바다로 순항 중이다.
◆우간다의 몰몬 선교사=이야기는 간단하다. 솔트레이크시티에 사는 몰몬교도 케빈 프라이스(앤드류 래널스 분)와 아놀드 커닝햄(조시 개드 분)이 아프리카 우간다로 파송되어 분투하는 스토리다. 자기도취적인 성향의 케빈과 상습적인 거짓말장이 뚱보 아놀드는 할리우드 버디 무비에서 친숙한 콤비유형이다. 프라이스가 꿈꾸던 선교지는 가난과 AIDS에 찌든 우간다가 아니라 올란도였다. 프라이스는 ‘우간다는 ‘라이온 킹’이 아니었어’하며 울부짖는다. 그가 부르는 “너와 나, 하지만 대부분이 나(You And Me, But Mostly Me)”는 그의 오만한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편, 상습적인 거짓말장이에 뚱보인 커닝햄은 영웅 타입이 아니라 참모에 만족하는 그림자형이다. ‘스타워즈’와 ‘반지의 제왕’ 팬인 그는 꾸며낸 이야기를 버무려 선교에 써먹는다. 몰몬경 지식이 박약한 커닝햄은 “다시 이야기를 꾸며대다(Making Things Up Again)”를 중얼거리는 소년에서 ‘내가 아프리카다(I Am Afirica)’를 부르는 자신만만한 청년이자 우연한 영웅으로 성장한다. 결국 우간다 사람들은 ‘몰몬경‘이 아니라 커닝햄이 새로 창작한 경전 ‘아놀드경(Book of Arnold)’에 교화된다. 뮤지컬 ;몰몬’의 진짜 주인공은 커닝햄이다.
솔트레이크시티로 가는 것이 꿈인 우간다 처녀 나불룽기(니키 제임스 분)는 “Sal Tiay Ka Siti(솔트레이크시티)”와 “세례받게 해주세요(Baptize Me)”로 아메리칸 드림을 꾼다. 동성애를 꽁꽁 숨겨온 선교지부장 맥킨리(로리 오말리 분)는 선교사들과 탭댄스로 부르는 ‘꺼버려(Turn It Off)’로 욕구불만을 발산한다.
◆패로디와 풍자=대본과 작곡에 참가한 트레이 파커는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 직후 “하늘에 있는 조셉 스미스(몰몬 교주)와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뮤지컬 ‘몰몬’이 빚지고 있는 것은 ‘미국의 모세’ 조셉 스미스 뿐만은 아니다. 영화 ‘부시맨’, 뮤지컬 ‘라이온 킹’과 ‘스파이더 맨’, 그리고 유명한 팝송을 패로디했다.
코미디 영화 ‘부시맨(원제: The God Must Be Crazy)’에서 보츠와나의 부시맨은 코카콜라병을 들고 백인 마을로 갔다. 대신 뮤지컬 ‘몰몬’에선 백인 청년이 몰몬경을 들고 우간다로 가는 역전의 문화충격을 그렸다. ‘몰몬’의 황금 트리오는 줄리 테이무어가 지휘한 ‘라이온 킹’과 ‘스파이더맨’을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우간다 촌락 주민들이 부르는 ‘하사 디가 이보와이(Hasa Diga Eebowai, ‘빌어먹을 신이시여’)’는 ‘라이온킹’의 ‘하쿠나 마타타(스와힐리어로 ‘걱정마’)’를 패로디했다. ‘라이온 킹’이 세뇌시켜온 아프리카에 대한 환상 대신 참담한 현실을 드러낸다. ‘I Am Africa’를 부르기 시작하며 ‘보노처럼’도 스파이더맨의 음악을 작곡한 보노에 대한 야유이며, 동성애 선교사 맥킨리의 합창곡 ‘Turn if off’는 ‘스파이더맨’의 부제 ‘Turn off the Dark’와 유사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서두와 결말에 북엔딩 기법으로 선교사들이 가가호호 방문하며 부르는 초인종의 릴레이곡 ‘Hello’가 코믹하다. 이 곡은 60년대 록 그룹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 부른 ‘Hello, I Love You’를 연상시킨다. 또, 커닝햄과 우간다 주민이 함께 부르는 ‘I Am Africa’는 아프리카를 돕기위한 미국 가수들의 자선앨범 ‘We Are the World’를 패로디하고 있다.
너무도 친숙해서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 풍자적이며 때론 외설적이고 불경한 가사가 이어지는 뮤지컬 ‘몰몬’은 리바이벌이나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찾을 수 없는 신선한 매력으로 가득하다. 지난 5월 발매된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은 40년래 최고의 브로드웨이 앨범으로 기록됐다.
◆동성애와 종교=뮤지컬 ‘몰몬‘은 나태한 브로드웨이를 일깨워준 참신하며 흥미진진하고, 지성적인 뮤지컬이다. 남남-여여 쌍쌍으로 다니는 ‘몰몬’ 선교사들은 브로드웨이가 좋아하는 ‘동성애 코드’에 안성맞춤이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터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종교, 특히 몰몬교는 황금 트리오가 더 큰 주제를 위해 빌려온 소재에 불과하다.
아놀드 커닝햄이 꾸며댄 몰몬경 이야기에 교화된 우간다 주민들은 개종하지만, 몰몬 선교회장은 경악하고 만다. 그러나, 주민들은 말한다. “그건 진실이 아니라 메타포였다구! 종교의 중요성은 진실 여부가 아니라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가 여부에 있잖아!”라고 응수한다. 이 작품은 몰몬교를 모욕하지 않는다. 종교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뿐이다.
‘몰몬’은 또한 스테레오 타입을 깨고 약자를 응원하는 ‘선한 뮤지컬’이다. 영웅 형의 프라이스 대신, 뚱보 커닝햄에게, 백인보다 흑인들을, 그리고 동성애자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브로드웨이에도 등급이 있다면 ‘몰몬’엔 R 혹은 X가 매겨질지도 모르겠다. 외설적이며 신성모독적인 대사와 가사가 버무려진 ‘몰몬’은 독실한 신앙인들은 ‘용서하지 못할 발칙한’ 뮤지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이나 종교간의 대화를 신봉하는 이들에겐 폭소를 연발하게 만드는 코미디다. 뮤지컬 팬이라면, 몰몬의 탄탄한 음악성과 대본의 문학성, 그리고 출연진의 환상적인 호흡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몰몬’은 내년 ‘뮤지컬 제왕’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고향인 런던 웨스트엔드에 입성할 예정이다. 티켓 $59∼$137($32 로터리 티켓은 공연 2시간 전 추첨), 유진오닐시어터(230 West 49th St. 212-239-6200) www.bookofmormonbroadw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