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히어로물의 세계는 끝이 없다. 온갖 종류의 힘을 가진 각종 '맨' 들이 숱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신체 능력과 사용 기술은 날이 갈수록 진화했다. 그들의 세상은 우리가 사는 현재보다 수십 수백 년은 앞선 듯 보이는 시공간이었다.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저(Captain America: The First Avenger)'는 그런 면에서 독특한 수퍼 히어로물이다. 시간을 거슬러 갔다. 2차 대전 무렵의 유럽과 미국이 그 배경이다.
물론 공상 과학적 상상력은 도처에서 발휘된다. 하지만 아주 허황되지는 않다. 전투 장면도 꽤나 현실적이다. 하늘을 날며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 대는 대신 남들보다 조금 센 주먹과 좀 더 화력 좋은 총기로 선과 악이 맞선다.
난무하는 컴퓨터 그래픽의 시각 공해에 지쳐 있던 관객 층 너무 허황되고 만화 같아 수퍼 히어로 영화는 도대체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투덜댔던 사람들이라면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저'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는 군에 자원 입대해 세상을 돕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 하지만 남들보다 왜소하고 병약한 탓에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나 그의 고운 심성을 눈여겨본 미군의 '수퍼 솔저' 프로젝트 팀은 비밀 실험을 통해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신체 능력을 선사한다. '캡틴 아메리카'로 다시 태어난 그는 히틀러보다 악랄한 '히드라' 조직과의 수장 슈미츠(휴고 위빙)에 맞서 세상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지극히 미국적인 내용이다. 제목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전개이긴 하다. 미국이야말로 특별히 백인 남성이야말로 스스로를 버리면서까지 위험에 빠진 세상을 구할 영웅이라는 메시지가 대놓고 깔려 있다.
'수퍼맨' 보다도 심하다. 전형적이다. 하지만 그 전형성이 주는 재미란 것이 있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도 무시 못한다. 군더더기도 없다. 전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단순명료하고 깔끔한 수퍼 히어로 영화다.
1940 년대의 느낌이 나는 의상과 세트는 영화를 왠지 완성도 높은 고전의 느낌마저 나게 해 준다.
후속을 기대하게 하는 엔딩도 흥미롭다. 내년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인 '어벤저스(The Avengers)'와의 연결고리를 슬쩍 흘린다. '어벤저스'는 마블 코믹스의 모든 수퍼 히어로 캐릭터가 총출동할 사상 초유의 영화가 될 전망이다. 40년대에 냉동됐다 70여 년이 지난 후 해동된 듯한 '캡틴 아메리카'의 이어질 활약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