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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인순이의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레'

안유회/편집국 코디네이터

노래방에 가면 '여긴 있을까' 한 번씩 노래책을 뒤져보는 곡이 있다. 몇 번 찾아서 없으면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버릇처럼 혹시 하며 찾아보게 된다. 꼭 부르자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잘 부를 자신도 없다. 그저 한때 마음을 빼앗겨 흥얼거렸던 노래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마음 끝에 남아 불현듯 그 흔적을 찾아보고 싶은 것쯤 될까.

그 노래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레'는 아름답다.

"이봐요 에레나 무얼하나. 종일토록 멍하니 앉아 어떤 공상 그리할까. 시집가는 꿈을 꾸나 돈 버는 꿈을 꾸나. 정말 에레나는 바보같아. 오늘 하루 이런 난리. 딱정벌레야 너는 아니.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레 하나뿐인 에레나의 친구 외로움도 닮아가네. 외로움이 닮아가면 어느 사이 다가와서 슬픈 에레나를 바라보네 울지마요 이쁜 얼굴 이쁜 화장이 지워져요. 긴 낮이 가면 밤 설레임에 뜬구름 골목마다 사랑을 찾는 외로운 사람들."

이 가사가 스페인 풍의 기타 연주-트로트-재즈 풍으로 이어지는 가락을 타며 인순이의 깊은 목소리에 실려 나오면 노을이 지는 대나무 숲에 바람소리 사각대듯 호젓하기 그지없다.

가수 인순이가 지난 15일 38년 만에 노래 속의 '딱정벌레'를 만났다. 38년전 인순이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던 15세 소녀였다. 주한미군이었던 로널드 루이스는 '동두천 미군부대 근처에서 늘 혼자 앉아 있던' 인순이에게 말을 건네고 위로했다. 인순이가 루이스에게 선물한 조각상에 새겨진 '당신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는 글귀를 보면 그 때 그의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인순이는 성공하고 유명해졌음에도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루이스와 만남은 기적"이라 부를 정도로 찾기 어려웠음에도 외롭고 어려웠던 시절 손을 내밀었던 이를 잊지 않았다. 15세와 19세 때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은 54세 58세가 되었다. 어둡고 힘 빠지는 소식이 많은 지금 중년이 되어 끌어안은 두 사람의 해후는 노래만큼 감동적이었다. 사진 속의 인순이는 지금 슬퍼도 나중엔 기쁠거라는 살아있는 증거로 소녀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레'는 1987년 인순이의 솔로 음반 '에레나라 불리운 여인'에 실렸다. 최성호 작사.작곡의 이 곡은 단 한 번만 들으면 가수의 삶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묘한 것은 그 나른한 쓸쓸함에도 알 수 없는 힘을 준다는 것이다. 인순이는 음반의 뒷면에 이렇게 적었다. "문을 열어주세요. 속박 구속 편견 질시 증오 위선이라는 어둠침침한 동굴문을 이제는 그만 열어주세요. 에레나는 내 우울한 유년 어두웠고 어려웠던 시절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나를 온갖 속박으로부터 의식의 자유로움으로 인도케하는 황금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인순이가 어릴 때 혼혈이라는 사실은 아마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만큼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최근 인순이는 한 인터뷰에서 혼혈이라는 뿌리에 대해 "난 150% 노력해야 80~90%를 알아줬다. 많이 넘어져 보니 어떻게 넘어져야 덜 아픈지 빨리 일어나는지 알겠더라. 이젠 90% 노력하면 120%를 알아준다"고 말했다.

50대 중반까지 현역으로 그것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수는 많지 않다. 나이가 들면 회고적이 되는 일반적인 경향과 달리 인순이의 노래는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힘차다. 슬픔을 겪은 사람 특유의 뒷심이다. 그래서 더욱 인순이의 삶은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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