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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욕하면서 배운다

Los Angeles

2011.08.0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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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숙/ 자유기고가
지난 수요일 두 사람의 J씨와 저녁을 먹었다. 나의 잦은 교통사고가 화제에 올랐다.

젊은 J씨가 말했다. "지난 5년 동안 네 번이나 차를 망가트렸는데도 매번 그냥 넘어갔었단 말이지? 혹시 이계숙씨 남편 좀 모자라는 사람 아니야? 아무리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렇지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어쩌면 젊은 J씨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이큐가 낮은지 항상 디즈니 영화만 보는 사람이니까.

집에 돌아와서 남편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비약들도 참 재미있게 하는군 하고 웃었다. 그는 내 실수(?)에 관대한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일단 벌어지고 난 일이기 때문이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듯이 저지르고 난 일은 백번 안타까워 해봤자 도로 예전처럼 복원되지 않는다. 둘째 어린 아이가 아닌 판단력과 자아가 성립된 성인이니까 스스로 알아서 해야지 옆에서 주의를 준다해서 듣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의 감정이 물건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차 망가진 거야 돈 좀 들여 고치면 끝나지만 잔뜩 자책하고 낙심하고 있는 사람의 기분을 더 상하게 해 이득 될 게 없다.

남편의 어머니는 사람보다 물건을 우선시 했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어쩌다 컵이라도 한 개 깨는 날은 아주 큰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물건을 망가트릴까 봐 항상 극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했는데 그런 어머니가 너무나 싫었단다. 그래서 자신은 물건보다 사람의 감정을 먼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아주 심한 잔소리꾼이었다. 여느 엄마들보다 그 정도가 더했다. 방 치워라. 도시락 통은 미리미리 개숫물에 담가 놓아라. 동생하고 싸우지 말아라 등등. 눈만 뜨면 듣는 그 잔소리가 얼마나 지긋지긋했던지 나중에 나는 상대방 하는 짓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일절 잔소리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 다짐은 지금까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

남편은 집안 일에 완전 무관심한 사람이다. 그중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이 화장실 휴지를 절대 갈아 끼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 쓴 휴지심이 걸려 있는 걸 발견할 때마다 펄쩍 뛰도록 열이 난다. 맘 같아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다. 이놈의 집구석엔 나 혼자 사냐? 화장실 휴지 하나 갈아 끼우는데 한시간이 걸리냐 두시간이 걸리냐? 그러나 나는 잔소리하지 않는다. 묵묵히 그 일을 한다.

늘 술에 취해 가족들을 괴롭히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은 나중에 두 가지의 형태로 나뉘어진다고 한다. 아예 술을 한방울도 입에 대지 않거나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아버지와 똑같은 전철을 밟거나.

우리는 남이 저지르는 실책에 대해 쉽게 흉보고 욕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태를 거울삼는 사람은 많이 없다. 저 사람은 저러니까 나는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지 본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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