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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에서] '눈치'를 보지 말고 '눈'을 보라

Los Angeles

2011.08.0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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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 목사/나성향린교회
신약학자들은 바리새인이 대단히 오해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동은 안 하는 사람 속마음과 행실이 다른 위선자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예수께서도 한 바리새인의 식사초대를 거절하지 않고 그들과 어울리신 적이 있다. 그들은 '회칠한 무덤'이란 비난을 받았지만 실제로 어울릴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기독교 안에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도 이런 부정적인 시각에 한몫했음도 감안해야 한다.

바리새인은 주전 2세기 만들어진 유대교 평신도 집단으로서 율법을 가능한 한 글자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특히 정결과 안식일 십일조에 관한 계명 등을 중시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의 정신은 무시하고 조문만 글자 그대로 지키면 된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융통성이 있었다. 이들은 정치권력이 종교를 위협하지 않는 한 거기 관여하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으므로 유대전쟁을 거쳐서도 살아남아 훗날 랍비 유대교의 조상이 됐다.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비유를 말씀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하는 경건한 사람이고 세리는 딴 것은 그만두고라도 직업 때문에 따돌림 당하는 사람이니 이 둘은 애초부터 비교대상이 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아무도 세리의 신앙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리에게도 신앙이 있어? 그게 무슨 얘깃거리가 되나?'하는 정도였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종교적으로 세리는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기도하면서 이렇게 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자기의 경건함을 하나님께 이렇게 과시하는 사람이 있을까?

반면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나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기도는 세리의 기도라고 말씀했다. 바리새인은 자기자랑 했고 세리는 겸손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바리새인이 뻐기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렇게 기도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는 신앙이 하나님의 '눈치'가 아닌 하나님의 '눈'을 보는 일임을 몰랐던 것이다. 그의 모든 선행과 경건히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눈치'를 보는 데서 나왔던 게 문제였다. 그런데 세리는 하나님의 '눈'을 봤다. 하나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그는 적어도 하나님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게 신앙임을 알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눈을 보려고 했던 거다. 그래서 그는 역설적으로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던 것이다.

진정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이 어떤 것인지는 하나님의 '눈치'가 아니라 '눈'을 봐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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