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발굴 조사차 몽골을 다녀왔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400여km 떨어진 곳이다. 전륜구동 차량에 몸을 맡기고 하루 종일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초원 한복판에 만들어진 통나무집에 도착하니 전기 전화 인터넷 상하수도 시설이 없는 그 곳은 내가 살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무엇보다도 하루의 시작과 끝이 다르다. 해가 뜰 무렵 개들이 짖는 소리로 시작해서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가 끝난다. 시계가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빈 시간은 인터넷을 들여다 보는 대신 저멀리 양떼와 발끝의 벌레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메운다.
음식은 하루 세끼 모두 삶거나 찐 고기 요리이다. 주변에 양과 염소를 치는 사람에게서 양 한 마리를 사 온다. 그리고 동물을 잘 잡는 아저씨를 불러 와서 몇몇 남자들이 양을 잡는다. 잠깐 기도를 드리고 동물의 숨을 끊는다. 가죽을 벗겨내고 내장을 들어내어 물로 속을 대충 씻어낸다. 배 속에 고여 있던 피를 모아 선지를 만들어 씻어낸 내장에 채워 순대를 만든다.
순대 간 염통 허파 등은 삶아서 그 다음 날 아침상에 올린다. 갈비 어깨 허벅지등의 덩어리 살은 쪄서 먹는다. 눈과 뇌가 들어 있는 머리는 일미다. 나머지 고깃살도 여러 요리에 넣어 먹는다. 버리는 것이 거의 없다.
냉장고가 없는 그 곳에서 그렇게 잡은 고기는 사흘 정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나면 또 한 마리를 잡을 차례이다. 염소는 양보다 맛이 깔끔하여 한국인 입맛에 더 맞는다.
쇠고기는 맛이 없어서 안 먹는단다. 실제로 먹어보니 과연 맛도 없고 질겨서 턱이 아프다. 소들이 초원에서 마음껏 돌아 다니다 보니 모두 근육질이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가 먹는 쇠고기는 평생 꼼짝하지 않고 사료만 받아 먹어서 기름기가 잘잘 흐르고 입에서 녹는 것일까.
물이 귀하기 때문에 양치를 하면 한 모금의 물로 입을 헹구고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는 고양이 세수를 한다. 하루 종일 발굴 작업으로 땀에 절은 몸은 며칠을 기다려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강으로 가서 멱을 감는다. 멱을 감는 도중에 한 떼의 말들이 몰려와 물을 먹는 바람에 멱을 감던 여자 대원들은 혼비백산을 하기도 했다.
하수도 시설이 없으므로 화장실은 재래식 뒷간이다. 그런데 무수한 파리와 벌레들이 뜨거운 날씨에 신이 나서 떠들어 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차라리 초원과 직접 협상(!)을 하는 편이 더 조용하고 깨끗하다. 물론 작은 모종삽을 가지고 가서 뒷처리를 해야 한다.
몽골 초원은 깜짝 놀랄 만큼 다른 세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전기와 수도와 인터넷이 없어도 세상이 굴러 간다는 당연한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전깃불이 없어도 밤하늘은 깜깜하지 않았다. 달이 밝으면 밝은 대로 달이 안 보이면 수많은 별들이 정신없이 반짝였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 전깃불을 켜고 인터넷을 하며 매일 씻는다. 자외선을 비롯한 온갖 험한 자연물로부터 보호받는 나는 보통의 몽골 사람보다 아마 더 젊은 모습으로 더 오래 살 것이다. 그러나 은하수와 별과 달을 보는 일은 훨씬 더 드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