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어머니의 농구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농구 사상 첫 은메달 획득을 주도한 간판 포워드 김화순(49)씨의 딸 신재영(19) 양이 미 여자프로농구(WNBA)의 입성 전단계인 미 대학체육연맹(NCAA) 디비전1(1부 리그)에 입성했다.
신재영 양은 NCAA 디비전1에 속해있는 루이지애나 대학(Univ of Louisiana at Monre)에 입학 9월부터 디비전1 무대서 활약하게 된다. NCAA 디비전1 소속 대학들은 선수 스카우트에 까다롭기로 유명하지만 신양은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만으로 스카우트 대상에 올랐고 입학허가를 받으면서 단박에 주목받았다.
김화순씨(178cm)보다 작은 174cm로 미국 선수들과 비교해 단신에 속하는 신양의 포지션은 슈팅가드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크지 않은 신장이지만 탄탄한 슈팅 실력과 타고난 경기 감각 여기에 두둑한 배포까지 더해지면서 시애틀 머서 아일랜드 고교 농구부의 주전 가드로 활약해왔다.
동양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주장을 맡아 리더십을 보여줬고 워싱턴주 올스타 머셔 아일랜드 고교 운동부 여자선수 부문 MVP 등으로 뽑히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SAT(미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학업 성적도 우수해 워싱턴주 내 명문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제시하며 '모셔가기' 경쟁을 벌였을 정도다. 그러나 대학 농구팀이 속한 리그의 수준이 대학 타이틀보다 우선시됐다. 그러던 중 디비전1에 속해있는 루이지애나 대학에서 먼저 러브콜을 보내왔고 신양은 주저없이 디비전1 데뷔를 선택했다.
신양이 한국 고교 여자농구 선수로는 사실상 처음으로 NCAA 디비전1 소속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 김화순씨의 헌신적인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김화순씨는 신양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자신이 코치로 활동하던 유소년 농구교실에서 딸이 재능을 보이자 여자농구의 명문 선일초등학교로 전학시켜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걷게 했다.
시작부터 될 성 부른 나무의 떡잎이었다. 코트에 선 신양을 보는 사람 마다 "엄마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았네"라는 감탄사들을 내놨다. 공을 다루는 감각이 남달랐다.
이쯤되니 김화순씨나 신양이나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김화순씨의 농구대표팀 선배인 정미라 전 금호생명 코치(현 중고농구연맹 부회장)로부터 시애틀에서 농구 아카데미를 운영중이던 제이슨 코치를 소개받았다. 기본기를 중요시하는 그의 농구 철학과 지도 시스템은 김화순씨가 그리던 그림과 딱 맞아떨어졌다. 선진 농구 시스템 하에서 농구 실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길로 모녀가 시애틀 농구유학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