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남성들이 ‘호연지기’ 정신으로 미 대륙을 열흘간 달렸다. 그들의 애마는 자동차가 아니라 ‘할리데이비슨’이란 이름의 명품 오토바이. 뉴욕·뉴저지의 이지라이더들로 구성된 ‘에이스라이더스클럽(ARC: Ace Riders Club 회장 김신영)’ 회원들과 LA, 알래스카, 그리고 서울의 한인 할리라이더스 22명이 동으로 대륙을 횡단했다. 이들은 지난 8월 25일 LA에서 출발, 덴버-오마하-시카고-버팔로-뉴저지를 거쳐 지난 3일 뉴욕에 도착했다. LA에서 뉴욕(NY)까지 대장정의 이름은 ‘LATONY’. 이들의 9박10일 대륙횡단기를 지상으로 본다. [편집자 주]
◆제1일=그 동안 몇 달에 걸쳐서 완벽하게 준비한 미대륙횡단 할리투어가 시작되는 날이다. 이른 새벽 5시 숙소의 여기저기에서 모두들 부산스럽게 출발 준비에 바쁘다. 아직 밖은 어두운 밤이건만 ‘오늘 갈 길이 멀어서 일찍 떠나야한다’는 원정대장(LA 에이스라이더스클럽의 김상규 회장)의 말씀에 따라 모터사이클에 줄이고 줄인 개인 짐들을 싣고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몇일 동안 온갖 음식으로 우리 팀원들을 따뜻하게 대접해준 사모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끝으로 집결지를 향했다. 이른 새벽의 찬 공기를 가르면서 할리데이비슨의 경쾌한 엔진소리는 뛰기 시작했다.
모터 사이클 13대와 지원 차량 미니밴은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15(North )번 도로를 북상하다가 40(East)번 고속도로로 길을 돌려 달리는데 오전 10시가 지나니 화씨 100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모하비 사막을 달릴 때는 120도가 넘어가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모든 것들이 말라 죽을 정도다. 달리는 도로에서 올라오는 지열과 모터사이클 엔진에서 품어져나오는 열기가 더해지니 모두들 기진맥진 상태가 됐다. 그러니 휘발유를 보충하고자 100 여마일 마다 쉴 때는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느라고 정신들이 없다.
이렇게 달리다가 목적지를 80여 마일 남기고 비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를 뿌려주었다. 우리에겐 단비였지만, 모두들 비옷으로 갈아입고 수중전을 치렀다. 오늘의 목적지인 애리조나의 호텔에 도착해 모두들 안도의 웃음을 띠웠다.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9시간 동안 주행한 거리는 총 435마일이었다. 인근의 한식당에서 부대찌개와 소주 한 잔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 모두들 일찍 자리에 들었다.
◆제2일=호텔의 아침식사가 부실하다는 여론에 따라 좀 큰 도시인 플래그스터프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나 아침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제의 더운 날씨에 비하니 이 정도 시원한 비는 얼마든지 맞아주겠다며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을 즐기며 달렸다.
89번 도로를 갈아타고 양 옆에 펼쳐지는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달렸다. 호피족 인디언들이 살던 터전이었다. 더 나아가서 160번 길 주변은 용맹하다는 나바호족 인디언들이 살던 모뉴멘트 밸리다. 유명한 서부영화 ‘OK 목장의 결투’를 찍은 곳이 바로 여기다. 인디언의 후예들은 정부의 보조로 큰일이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간혹 길가에 좌판을 설치하고 우리처럼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수공으로 만들었다는 물건들을 팔기도 한다.
오늘의 목적지를 20여 마일 남긴 지점부터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었고 여기저기서 번개가 지상으로 내리 꽂히고 있었다. 온몸은 생쥐처럼 젖어 맛있는 스테이크와 와인 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달랬다. 그리고, 콜로라도주 듀랑고의 호텔에 도착하였다. 총 383마일이다.
◆제3일=오늘도 아침 5시부터 움직임이 부산해지기 시작한다. 로드 캡틴의 투어 브리핑에 앞서 행운권 추첨이 있었다. 당첨된 사람은 오늘 바이크를 안타고 편안하게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 된다. 3번과 5번이 당첨되었다. 3번은 내 번호이기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늘 하루 편안하게 차 안에서 경치구경을 하면서 앞서 달리고 있는 멤버들의 라이딩 실력을 평가 할수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오늘은 록키산맥을 넘는다. 주위의 경관이 아름답지만 산길을 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긴장을 해야한다. 550번 국도로 북상하다가 차량용 무전기가 고장이 나서 앞서가는 바이크와 교신이 불가능하게 됐다. 무전기를 고치려고 몇 군데 들렸으나 부품이 없다고 하여 포기하고 계속 달렸다. 주위의 모든 산들이 1만 피트가 넘는다. 오전의 날씨는 60도 미만이라서 라이딩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덴버까지 내려오는 중에 많은 스키장이 있었다. 겨울에 스키를 즐기러오는 사람들을 위해 빌려주는 렌탈 홈들이 타운을 형성하고 있었다. 유럽풍의 아름다운 마을에서 스키를 탈 수있는 베일, 스키와 온천을 같이 즐길 수 있는 글렌우드 스프링스, 알파인 스키로 유명한 아스펜 지역을 지났다. 덴버를 60마일 앞두고 쏟아지는 소나기와 싸우느라고 힘이 들었다. 저녁은 LA 갈비를 구워서 허기를 채웠다. 동부지역에 28년만에 온다는 허리케인의 피해가 클 것이라는 보도 때문에 뉴욕 지역의 안부가 걱정이된다. 모두들 별일 없이 지나가기를 기도해야겠다. 오늘은 422마일, 내일은 500 마일 이상 달려야 한다.
◆제4일=76(North)로 북상하다보니 네브라스카로 진입한다. 80번(East)으로 바꾸어타면서 계속 달리니 드넓은 옥수수 밭이 이어지며 끝이 안보인다. 오마하를 100여 마일 앞두고 시커먼 먹구름 밑으로 들어서며 다시 비옷과 방수장갑. 방수부츠 커버, 풀페이스 헬멧으로 중무장을 하고 달렸다. 얼마 후 몰아치는 폭풍우에 바이크가 옆으로 흔들렸다. 다행히도 바로 출구로 나가 주유소에서 피난했다. 따끈한 커피 한잔 마시고 나니까 다시 의욕이 솟는다.
오후에 전담 기사로 온 CCR이란 친구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바이크를 타보겠다고 했다. 함께 50마일을 앞뒤에서 에스코트를 해주며 달렸다. “한국에서 면허 따고 몇 번 타본 것이 전부인데 미국에 와서 대륙횡단하는 팀에 끼어 라이딩을 했노라”고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했다. 오늘 라이딩 머리 올린 CCR이 요리솜씨를 뽐내려고 부대찌개를 준비했다.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주행거리 534 마일, 힘든 하루였다.
◆제5일=아침 7시 아이오와 카운실블러프를 출발한다. 날씨가 서늘하여 모두들 가죽재킷을 꺼내 입었다. 산업시설이 별로 없는 아이오와주 고속도로 주변에는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또, 야트막한 구릉에는 많은 숫자의 풍력 발전기가 늘어서서 회전날개를 서서히 돌리고 있었다.
사우스다코다 스터지스에서 몽골리안 BBQ를 먹고 다시 출발했다. 일리노이주에 들어서는 88번 도로를 달려 시카고 할리클럽 친구들이 예약해준 호텔로 들어서니 친구들 1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전에 봤던 반가운 얼굴들이라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며 우정을 과시하며 기뻐하였다. 얼마 전 고인이 된 심지로 형님 이야기, 그곳 클럽의 활동과 이곳저곳의 이야기를 소주 한잔씩 돌려가며 나누었다. 481 마일 달린 날이다.
◆제6일=시카고클럽 형제들과 한식당에서 맛있는 설렁탕으로 아침을 먹고 심지로 형님의 묘지를 찾았다. 연 초에 스키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몇 개월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내시다가 한달 전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평소 철인삼종경기(마라톤·싸이클링·수영)에 출전하시고 2년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대륙횡단을 하실 정도로 강인함을 재산으로 여기던 분이셨다. 매년 우리 행사를 같이 하면서 우리 형제들에게 많은 사랑과 배움을 주셨던 형님이셨기에 모두들 마음 아파했다.
정오가 되어 90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진하다가 인디애나주로 들어섰다. 동부 지역에 가까이 오니 유로도로가 되어 돈을 내고 지나가야 한다. 시간이 제법 걸린다. 94번 도로로 북상하다가 모두 피곤하다고 하여 예정에 없던 미시간주의 뉴버팔로에 호텔을 잡았다. 원래 계획은 클리블랜드를 지나 펜셀베이니아주의 요크에 있는 할리데이비슨 공장을 견학하는 것이었다. 투어를 못할 바에야 워싱턴 DC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DC 일정을 취소하고 뉴욕으로 직행하기로 했다. 오늘은 143마일을 달렸다.
◆제7일=어제 선두그룹에서 네비게이션만 믿고 달리다 예정에 없는 미시건주까지 들어와 있었다. 라면을 후루룩 먹고 출발, 90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80도로 올라가니 휘발유 보충시간에 모두들 두꺼운 재킷을 벗어버렸다. 지루한 라이딩이라 졸음이 몰려온다. 하지만, 쉬는 시간은 120마일 달린 후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다 보면 잠이 깬다. 그러나 20∼30분 후엔 다시 잠이 쏟아진다.
인디애나주를 지나 펜주의 에리를 지나쳤다. 갑자기 포도향이 콧날을 찔러 보니 포도밭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뉴욕주로 들어온 것. 버팔로에서 자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LA에서 온 마리오님이 몸살 기운이 있어 온몸이 춥고 떨린다고 한다. 곁에서 한국에서 온 CCR이 극진하게 간호를 해주었다. 캐나다로 넘어간 친구들은 새벽 2시가 다되어서 돌아왔다. 모두들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다. 492마일.
◆제8일=오늘의 아침식사는 라면이다. 대신 절경이 기다린다. 나이애가라 폭포로 이동하기로 했다. 어제 밤 야경을 보고 오늘은 폭포 밑에서 관광선 ‘안개 속의 숙녀호’를 타보기로 한 것이다. 배를 타는데 모두에게 비닐로 된 비옷을 한 장씩 건네준다. 관광객들은 우리들의 옷차림을 보고 범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냐”고 묻는다. 모터사이클로 대륙 횡단 중이라니 모두들 입을 딱 벌린다. ‘당신들 미친 것 아니냐!’면서. 그러나 ‘대단한 한국인들!’이라면서 끝까지 무사고로 운행을 하라고 걱정을 해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뉴욕시까지 남은 거리는 500 마일. 오늘은 오후에 200 마일 정도 달려서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핑거레이크스의 세네카레이크 근처에서 자기로 하였다. 길다란 호수 주변에는 포도밭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호수에서 올라오는 수분과 일조량이 많아서 포도의 당분을 향상시키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한다. 한국의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흔히 볼수있는 모습이 보여 바이크를 세우고 우루루 몰려갔다. 시골 아줌마가 옥수수·수박·자두·복숭아 등을 벌려놓고 파는 중이고, 옆에서 놀던 귀여운 꼬마들은 요란한 할리 배기음 소리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자두와 복숭아를 씻지도 않고 맛있게들 먹었다. 다들 한국의 시골풍경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큰 수박 한 덩어리를 사서 차에 싣고 다시 길을 재촉, 왓킨슨글렌에 도착하였다.
◆제9일=아침에 산책 겸해서 ‘동부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리우는 왓킨스글렌 계곡을 돌아볼 예정이었다. 모두들 피곤해서인지 몇 명만이 나와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열리는 BMW Rally에 모터사이클 1000여대가 모인다고 한다. 등록에만 50불이라고 해서 구경을 포기하고 바이크를 돌려 뉴욕을 향했다. 17번 도로를 타고 남행하여 2시경에 산정호수라고 부르는 장어구이집에 도착하였다. 마침 마중 나오기로 한 두 친구를 만나서 반가운 해후를 하였다. 배가 무척 고팠기에 맛있게 구운 영양식 장어구이와 민물고기 매운탕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얼큰한 매운탕에 소주 생각이 간절하다’는 친구들의 열망을 무시하고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바이크 운행중에는 ‘절대금주’라는 절대적인 약속을 알고 있기에 모두들 따라와 준다.
17번으로 내려가다가 우드베리 근처에서 6번 도로로 바꾸어서 베어마운틴 쪽으로 길을 잡았다. 팰리세이드 파크웨이를 타고 한인타운으로 내려와 팰팍의 또치집 앞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미리 준비한 기념패와 환영 배너를 배경으로 기분 좋은 저녁식사를 하였다.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과 같이 참여하지 못한 클럽 멤버들도 모여서 무사히 돌아온 것을 축하해 주어서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타 지역에서 온 친구들에게 우리 뉴욕팀의 단결력과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어서 고마웠다. 오늘 밤 숙소는 킹사우나. 그곳에서 모두들 피로를 풀고 밤을 지새기로 하였다. 297 마일 주행거리다.
◆제10일=오늘은 뉴욕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바라며, 95번 고속도로를 남행해서 리버티파크로 갔으나 통행금지였다. 홀랜드터널을 지나 911 이후 한창 개발 중인 그라운드 제로를 거쳐 맨해튼브리지를 건넜다. 다시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 맨해튼으로 들어가 한인타운쪽에서 종착지 타임스스퀘어에서 바이크를 세우려했으나, 주차공간이 없어서 포기해야 했다. 소호로 가니 관광객들이 우리 일행의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복잡한 맨해튼 중심가를 떼를 지어 모터사이클이 지나가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닐테다.
해단식은 뉴저지에서 가든파티로 했다. 뉴욕클럽의 사모님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BBQ 등 음식과 맥주가 차려졌다. 오늘의 주행거리 98마일까지 총 3475마일의 여정은 이렇게 끝났다. 어려운 도전을 무사히 끝내고 맛보는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