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소매자락을 꼭 붙잡고 빨리 돌아서지 못하게하는 늦더위는 마치 짓궂은 친구와도 같다. 풍요의 가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밉지 않은 백년지기 친구.
요즈음 컴퓨터 사이트를 통하여 자주 받아보는 좋은 문구나 사진은 무료한 일상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 준다. 며칠 전 코스모스의 진 풍경을 화면으로 감상하며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예술적 자태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하늘하늘 무리지어 핀 꽃들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화면을 움직이던 손이 딱 멎어 버렸다.
마치 어느 '무비스타'의 크로즈 업 된 얼굴을 본 듯한 순백의 코스모스 한 송이가 내 시야를 사로 잡았는데 그 얼굴은 조금 균형이 안맞는 언밸런스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평소에는 꽃을 보아도 전체적인 이미지만 보고 대충 넘어갔는데 왜 코스모스의 꽃 잎이 몇 장인지 알고 싶었을까? 분명 분홍빛이나 연보라색 잎들은 끝이 톱니 모양으로 8개의 고른 타원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유독 흰색 꽃잎은 9장 이었다.
물론 행운의 네잎 클로버도 있고 장미의 잎도 겹장미일수록 그 수가 다양하기에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원래 코스모스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뜻하고 있기에 내 나름대로 큰 발견이나 한듯 이렇게 우주의 질서를 거부하는 꽃도 있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런 후 다른 송이를 찬찬히 살펴보니 9장은 커녕 7장으로 피어난 분홍 꽃잎도 간혹 있었다.
코스모스 꽃잎을 세어 보다가 문득 넘침과 모자람의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우리 삶에도 남보다 조금 더 있거나 하나가 모자람으로 인하여 생기는 갈등이나 오해가 얼마나 무서운 일을 불러 오는지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빚어지는 일들도 8장의 짝수가 아닌 9장이나 7장의 잎으로 태어난 코스모스의 자태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보아 넘길 수는 없을까 잠시 자아도취에 빠져 보았다.
바람결에 똑 부러질 것만 같은 연약한 줄기와 꽃송이가 벌과 나비까지 보듬어 주고 있었다. 벌은 작고 볼품 없는 꽃 한송이에서도 꿀을 만들기 위하여 부지런히 날고 있었다. 해바라기의 중심이 노란 원의 모습으로 일가를 이루고 있듯이 작고 가냘픈 몸이 송이마다 샛노랗게 일가를 이루어 곤충을 맞아들이고 있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보였다.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부대낌도 넘침과 모자람의 조화를 이기지 못하는데서 생겨난다. 감성이 이성을 이기지 못하고 이성이 감성을 억누를 때 우리는 곧잘 상처를 받게 된다.
자연계의 조화를 교훈 삼아 조금 모자라면 모자란 듯 한 걸음 물러서고 내 것이 조금 넉넉하다 싶으면 어깨를 치켜 세우기보다 연약한 몸으로 벌과 나비를 쫓아버리지 않고 기꺼이 맞아들이는 코스모스의 붉은 애정과 순결을 닮고 싶다고 기도하며 풍요의 가을 속으로 조심조심 걷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