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세월에 얹혀서 흘러가는 것을 그때는 몰랐을까? 동동거리는 사이 어느새 30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런데 아직도 난 미국이라는 나라가 요원하다. 나보다 먼저 이민 온 아버지는 미국에서 몇 해를 살고 나서 '이제 미국을 조금 알 것 같다'고 한다. 난 의아했다. 왜냐하면 특히 5개 국어에 능통한 아버지이기에 미국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도 미국으로 이민 왔다. 한국을 떠나기 전 내 친구들은 '넌 학급에서 영어를 제일 잘 했으니 미국에 가면 잘할 수 있을 거야' 용기를 북돋워줬다. 친구들뿐 아니라 나 자신도 턱없이 그리 믿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오니 앞이 캄캄한 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상대가 저만치 간 다음에야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겁쟁이라서 운전마저 못하고 영어는 벙어리 한가지니 반병신이나 다름없는 내게 그이가 잘 맞는 일이라며 떡 하니 고급 갤러리를 차려줬다. 초기엔 손님이 '익스펜시브'라 해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기막힌 수준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시작한 갤러리를 운영해 간다는 건 나로선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죽을 둥 살 둥 최선을 다하다 보니 한때는 네 곳에 지점을 가지고 있을 때도 있었다. 어떤 지인은 우리 비즈니스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떼돈 버는 줄 알았는지 자기도 지점을 내면 안 되겠느냐고 슬며시 운을 뗀다.
처음 비즈니스를 열고는 손님들이 들어와서 '이 미술품이 참 좋다며 다시 사러 오겠다'고 하면 고맙다고 깍듯이 인사하며 정말 조금 있다가 저 손님이 다시 와서 사가는 줄 알고 눈 빠지게 기다리기를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금방이라도 부자가 되는 줄 알고 좋아하며 희망에 부풀었던 기억이 아직껏 생생하다. 이 사람들의 헤픈(?) 칭찬 습관과 문화를 알 턱이 없는 난 날마다 일터에 나가선 꼭 그들에게 놀림과 속임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며 아 그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며 터득하기 시작했다.
이리 저리 사람에 치이며 영어 클래스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끊임없이 공부하며 나도 차차 눈치가 구단이 되어갔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딱 지불하기 전에는 배실배실 웃으며 그들 말을 믿지않게 되었다. 아무리 입이 닳도록 찬사를 늘어 놓고 껌벅 죽는 시늉을 하더라도….
내가 30년 전 처음 이 도시에 아시아 갤러리를 시작했을 땐 도시를 통틀어도 한 군데도 우리 갤러리 같은 곳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황무지에서 좌충우돌하며 완전 개척해냈지 싶다. 그 시절만해도 처음 3년 간은 손님들이 상품을 사려고 카운터에 갔다 놓고 '이게 어느 나라 제품'이냐고 물으면 곧이 곧대로 '한국 산'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때 그들은 미안하다면서 도로 놓고 나가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알량한 고집으로 어느 때 한번도 이것이 어느 다른 나라 즉 그들이 선호하는 일본이나 중국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러던 것도 세월이 흐르며 노력의 결실인지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해서 이 도시에서는 유명한 아시아 갤러리 명단에 오르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이 도시뿐 아니라 멀리는 뉴욕에서까지 이 도시에 사는 친구에게 소개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기까지 나는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민간외교가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사실 고급 손님들은 말은 하지않지만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말없는 대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오지 않으니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미국 50개 주와 캐나다 일본 유럽 여러 나라에서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특이한 수집품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오는 재미있는 손님을 상대하는 곳에서 나 또한 인생을 즐겼으리라. 난 이 사회 가장 상류층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서 서비스하는 것은 물론이고 깍듯한 예의는 더 말할 것이 없었지 싶다.
그런데 이상한건 때로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는 아이들이 갤러리에서 일을 하면 말을 잘해서 더 잘 할 것 같은데 그게 아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어쩐 일인지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더 나으니 말이다. 아이들이나 그이가 가끔 일을 도와주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도둑도 잘 맞는다. 사람 잘 믿는 그이는 지금도 미국 사람들은 다 정직하다고 대책 없이 믿다가 당하곤 한다.
보통 한가지를 구입하려면 적어도 서너 번씩 다녀가는 여유롭고 느긋한 손님들은 급할 것이 없으므로 눈인사만 하고는 박물관인양 고객 마음대로 보고 즐기게 내버려둔다. 조용한 갤러리에서 날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영혼이 충만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 보면 그 비즈니스로 큰 돈을 번 것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곳은 내가 좋아하는 예술품으로 가득해서 눈이 즐겁고 마음이 풍요롭다. 더불어 턱없이 '행복한 착각'에 빠져 하루하루 지낸 것이 30년 세월을 훌쩍 넘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