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맨해튼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국어교육원 주최 '제1회 외국인 한국어 백일장 대회'. 장원 발표를 앞두고 참가자들이 모여 이우성 문화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질문이 없느냐”는 이 원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백인 남성의 손이 번쩍 올라갔고, 곧바로 한국어로 “얼마 전 미 의회에서 FTA가 비준됐는데, 한국에서 통과될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나요”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이 원장이 "일부 반대가 있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답변하자 그는 다른 참가자들을 위해 영어로 통역까지 해줬다. 이 원장은 “나중에 문화원 행사 때 꼭 와서 통역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장원은 그에게 돌아갔다.
이날 장원을 차지한 라이언 러셀(29·사진)은 한인 아내와 딸 넷을 둔 자칭 ‘공처가’다. 현재 맨해튼에 살면서 폴 해스팅스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그는 행여나 상을 받지 못할까 봐 아내에게는 “일 하러 간다”고 말하고 대회에 참가했다고 한다.
“혹시 상을 못 받으면 아내한테 말하기가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비밀로 했어요. 장려상도 감사히 받으려 했는데, 장원이라니 정말 놀랍고 기쁘네요. 특히 아내가 자랑스러워할 것 같아요.”
2001년 선교 활동을 통해 한국을 처음 방문한 러셀은 한국의 매력에 푹 빠졌다. 미국에 돌아온 뒤에는 컬럼비아대 법대에 다니면서 한국학을 부전공하고, 한국 역사도 공부했다.
“2년 동안 경남 창원에 머물렀는데, 한국어를 잘 하고 싶어서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3시간 동안 공부했죠. 지금은 그때만큼 공부 못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때 공부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는 ‘한국’에 대해 그는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서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러셀은 이 글에서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은 모순이 많은 나라"라며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 모순이 한국의 가장 위대한 재산일지도 모른다. 해결이 없어 보이는 문제를 창조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모만 백인일 뿐, 러셀은 제육덮밥 같은 한국 음식을 사랑하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그는 “딸 4명에게도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