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졸업후 처음으로 맨해튼 트라이베카에 있는 플리시어터(Flea Theater)에서 자신이 직접 제작한 세트디자인을 일반에 선보인 것이다.
연극명은 `The Moon of the Caribbeess'.
이날 그는 언젠가 무대예술의 중심지 뉴욕 브로드웨이에 자신의 작품들을 올리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 작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세트디자이너들이 덤벼들었던가.
그러나 자신의 작품구상과 학생 시절 경력, 그만한 실력이 충분함을 무기로 연출자를 설득, 결국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이 작품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오는 3월 맨해튼 뉴욕스쿨유니버시티에서 무대에 올릴 `Blue Moon over Memphis'라는 연극 세트디자인도 그의 작품.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사실 이 분야에서 사회 초년병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의 경력을 보면 ‘준비된 세트디자이너’로 대성할 잠재력은 충분하다.
우선 세트디자인계에서는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등 전설적 인물로 알려진 예일 드라마스쿨의 학과장 밍초 리 교수 밑에서 혹독한 수업을 받았다. 대학원 3년 내내 다리 쭉 뻗고 밤잠을 청해본 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다.
김씨에 생존력을 길러주기 위해 리교수는 유난히 혹독한 채찍질을 가했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포기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그 결과 실력을 인정받아 리교수는 학창시절은 물론 졸업 후에도 그의 작품 다수를 옆에서 도왔다.
토니상을 수상한 `K2'는 그녀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
이 대학 마이클 예건 교수가 맡았던 다수의 뮤지컬과 오페라 작품에서도 그는 자질을 인정받았다.
작년엔 학생 신분으로 그 유명한 상용극장 예일레퍼터리극단에서 있었던 연극 `Curse of Starving Class'의 세트디자인을 맡아 호평을 받았었다.
그리고 이제 뉴욕 무대예술 분야를 주름잡고 있는 소위 `예일 마피아' 대열에 합류했으니 이제 거칠 게 없는 형세다. 게다가 그에겐 강인한 개척자 정신이 큰 무기다.
우선 대학을 중퇴하고 이민길에 오른 그가 서툰 영어로 주류사회에서 당당히 서는 모습이 그렇다. 또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당장 그만두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택하는 게 그렇다.
미국에 온 것은 대학 3학년에 다니던 지난 1988년. 보스턴 노스이스턴대학에 입학하면서 전공을 영문학에서 신문방송학으로 바꿨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1년여만에 행로를 또다시 바꿨다.
그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 챈 교수가 차라리 디자인을 공부하라고 강력히 추천하면서다. 그래서 다시 입학한 게 매사추세츠 예술대(College of Art). 여기서 1학년부터 다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했다.
“취미로 그림을 그려본 적은 있어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은 없었어요. 굳이 미술과 관련을 짓자면 부친이 건축디자인을 직업으로 갖고 있죠. 입학 시험에서는 시를 지어보라는 등 개인의 잠재력을 많이 보는데 저한테도 그만한 소질이 있었나봐요. 대학에 들어가서 정말 열심히 쉴새 없이 공부했습니다.”
졸업한 뒤 본국에서 린타스라는 영국계 광고회사에 들어가 유니레버나 존슨앤존슨 등의 광고물을 제작했다. 이어 디자인회사 DC&A로 옮겨 기업 로고와 심벌을 만들었다. 현재 중앙일보사가 사용하고 있는 J 로고는 그의 대표적 작품. 한솔그룹 오크밸리리조트 등 굵직한 기업 로고도 다수다. 이외에 서울 리츠칼튼호텔 식당이나 나이트클럽 등에 가면 쉽게 만나는 상호 등이 그가 만든 디자인.
그의 실력이 빛을 본 작품은 1995년 제작한 광복 50주년 기념 콘서트 사진집 디자인.
`음악과 인생 그리고 영혼(Music, Life and Soul)'이라는 이 사진집은 95년과 96년 본국과 미국에서 디자인전문기관으로부터 우수디자인으로 선정돼 상까지 받았다.
“한국에서 터전을 닦아갈 무렵 미 영주권자라는 신분상 한계 때문에 미국에 돌아온 뒤 미국계 디자인회사에서 잠시 몸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불쑥 내가 갈 길은 세트디자인이라는 생각에 다시 사표를 냈죠.”
그리고 입학원서를 낸 곳이 예일대 드라마스쿨.
그런데 이 분야에 경력도 없고 용어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자신의 자질 하나만 믿고 지원한 것이다. 그런데 덜커덕 합격 통지서가 날라 왔다.
예일 드라마스쿨이 어떤 곳인가. 드라마 분야에서는 미국에서도 최고로 치는 학교다. 유명 여배우 메릴 스트립과 시고니 위버 등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현재 맨해튼 무대 예술계를 주름잡고 있는 사람들도 소위 `예일 마피아'로 불리는 이 학교 출신들.
김씨의 작품 활동은 이제 시작이지만 곳곳서 작품을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적잖다. 그러나 좀더 좋은 작품을 해보자는 게 그의 욕심.
-예일 드라마스쿨 진학 때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 무모하게 도전했던 것 같아요. 그저 그 학교가 좋다는 얘기만 듣고 다른 데는 지원도 안 했으니까요. 나중에 알고 보니 재수에 3수, 심지어 5번씩 도전했다가 낙방한 학생들도 적지 않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예일 드라마스쿨은 새내기 연극인의 꿈인데다 세트디자인 전공의 경우 한해에 고작 네명 정도밖에 뽑지 않거든요. 그래도 앞으로 재목이 될 사람을 뽑는다고 하니 저한테도 이 분야에 재능은 있는 모양이에요(웃음).”
-세트디자인을 선택한 동기는.
“대학에서 방송반 서클활동을 해봤지만 신문보다 방송이 좋아요. 언제나 두고볼 수 있는 것보다 그때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순간적 짜릿함에서 즐거움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무대 예술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게 됐는지 모릅니다.”
-직업으로써 세트디자이너는 어떻습니까.
“세트디자이너는 철저히 프리랜서로 일합니다. 일정액을 받고 한 작품의 세트디자인을 통째로 맡거나 다른 세트디자이너의 보조로 일하며 시간당 급여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러다 보니 이 분야에서 웬만큼 명성을 얻기 전까지 낮에는 보조로 밤에는 자신이 수주한 작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닐텐데요.
“다른 예술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매일 순간 순간이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입니다. 몇초마다 이런 갈등이 반복되기도 하죠. 세트디자인은 혼자서 창조적인 일을 하는 직업이라 자신의 정신적·육체적 한계와 능력에 대해 회의를 느낄 때가 그만큼 많거든요. 또 소속감 없이 혼자서 일하는 것도 힘들구요.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나, 과연 살아 남을 수 있나 하는 두려움에 곧잘 휩싸이곤 합니다.”
-여성으로서 한계를 느낀 적은 없습니까.
“세트디자인은 연극에서 3D 업종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망치와 못을 들고 세트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남자들이라 이들을 지휘하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 세트디자이너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 늘어나는 추세고 오히려 유리한 점도 많아요.”
-무대예술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분야가 있습니까.
“오페라입니다. 개인적으로 오페라를 즐기기도 하지만 다른 분야보다 무대의 규모가 크다는 게 매력입니다.”
-평소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1주일 내내 하루도 쉬는 날이 없어요. 하나의 세트디자인이 완성되기까지 대본을 읽고 등장인물의 특징을 파악하고 도서실과 인터넷에서 자료를 뒤져 당시 시대상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등 수많은 작업이 필요합니다. 모형 제작도 그중 하나입니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의상에 따라 문이나 의자 등의 크기도 달라져야하는데 이런 실물을 그대로 축소한 모형을 만들자면 대부분을 수작업에 의존해야합니다.”
-세트디자이너가 되려는 한인후배에게 해주고싶은 조언이 있다면.
“세트디자이너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이 사는 얘기를 해주는 일입니다. 따라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고 관찰하고 해야합니다. 기본적으로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인간애를 갖춰야 합니다.”
약력
1967년 서울 출생
1986년 성신여대 영문과 입학
1988년 노스이스턴대 신방과 편입
1989년 매사추세츠예술대 입학
1993년 영국계 광고회사 린타스 입사
1997년 예일 드라마스쿨 입학
2000년 프리랜서 세트디자이너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