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발음이 아주 비슷한 단어 두 개가 있다. ‘Historic’과 ‘Histrionic’이다. 전자는 역사적이란 뜻이다. 사람들의 집단적 삶의 궤적에 영향을 끼친 인물 또는 사건을 말할 때 사용한다. 후자는 마치 배우와 같다는 의미인데 정도가 지나치면 정신병으로 분류된다.
전문용어로 연기성(演技性) 또는 히스테리 인격 장애(Histrionic Personality Disorder)라는 병이 있다. 삶을 무대로 인식해 '지나치게 연극적이고 반응적이며 행동의 지나친 표현 및 특유한 대인관계의 장애'가 주요증상이다(알기 쉬운 의학용어 풀이집).
이 두 단어는 독재자들의 비극을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특히 42년 철권통치 끝에 비극적 종말을 맞이한 무아마르 카다피의 삶과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 두 개의 키워드다.
카다피의 시작에는 역사성이 넘쳤다. 27세의 카다피 대위는 질문했다. 지중해의 길고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있는 산유국 리비아는 왜 외세에 치이면서 가난에 허덕이는가? 그는 답을 찾았다. 유약하고 부패한 지도층, 그리고 그들에 의한 국부(원유)의 유출과 낭비였다.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그는 그야말로 송유관 밸브를 굳게 틀어쥐고 오일머니를 챙기기 시작했다. 이 재원으로 사막 리비아를 오아시스 리비아로 바꾸려 했다. 파라오들이 꿈꾸던 만리수로(萬里水路)도 건설했다.
문제는 카다피가 주도한 역사적 변화과정에 그의 연기성이 스며들면서 시작됐다. 통치가 퍼포먼스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범 아랍주의, 아프리카동맹운동, 반 서구 정서의 선봉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부터다. 결국 테러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테러는 극렬집단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한 파괴의 퍼포먼스이다. 카다피의 연기성 성격과 맞아 떨어졌다.
점차 그의 통치는 전위적 공연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천막생활, 화려한 전통의상, 미녀경호원들,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외모, 언어와 몸짓. 이렇게 그의 역사성은 연기성으로 변화했고 끝내 리비아인들은 그에 대해 봉기했다.
우리에게도 비극적 종말을 맞이한 독재자가 있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를 비극적 역사의 인물로 보지 않는다. 그가 한국인의 집단적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박정희가 역사적 변화를 선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연기성 대신 역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한탄사관(恨歎史觀)’ 즉, 민족의 현실에 대한 깊은 탄식은 그에게서 배우적 성품을 빼앗아간 대신 그를 신앙적으로 만들었다. 근대화에 대한 교조적 신념과 집착을 말한다.
그의 연설문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결 같이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아보며 가슴을 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결론은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자는 호소이다. 두 개의 예를 들어보자. 쿠데타에 성공한 뒤 3개월. 그는 1961년 광복절 제16주년 기념사에서 5·16의 의미를 정리한다.
첫 문장은 예의 그 한탄이다. “장구한 역사를 자랑해온 우리 민족이 제국주의의 질곡에 40년 동안을 신음해왔다”고 외친 그는 “우리를 병탄한 침략자의 소행도 가증하거니와 망국과 굴욕을 자초케 한 우리의 전철은 영원한 민족적 경종”이라고 지적했다. 이 경종을 가슴에 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근로역행(勤勞力行)을 통해 “우리들 자손에게 영원한 유산을 남겨 주어야 하겠습니다”가 그의 답이다.
첫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한탄스런 역사-변화된 앞날의 패턴은 더욱 극적으로 되풀이된다. “침체와 우울, 혼돈과 방황에서 우리 모든 국민은 결연히 벗어나 ‘생각하는 국민’‘일하는 국민’‘협동하는 국민’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가 이 연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역사를 ‘무대’로 생각하지 않고 ‘일’로 파악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