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인 반미(反美) 지도자인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가 지난 20일 사망했다.
그의 정확한 사망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향 땅 인근에서 시민반군들에게 체포된 후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폭격을 피해 도주하던 중 고속도로 아래 배수관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20대 때 이미 최고 권력자가 된 후 40여년 간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그의 처참한 최후는 충격적이었다. 유혈이 낭자한 채 시민반군에 둘러싸인 독재자의 마지막 모습은 초라했다. UN 본부를 방문했을 때 호텔 대신 천막에서 지내는 등 각종 기행을 일삼던 모습과 달리 그 역시 죽음과 총구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방치되다시피 한 그의 주검에서는 리비아 국민들의 오랜 분노가 느껴졌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지를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카다피는 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기 전에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최고 권력자의 삶을 내려놓기가 그토록 힘들었을까. 자신이 갖고 있던 부와 권력의 대부분을 내놓는다 해도 그에게는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들 만큼 많은 게 남아 있었을 터인데. 달리는 ‘권력의 자전거’를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평범한 사람의 처지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권력에 대한 집착과 아집이다.
#. 어제 아침, 신문을 가지러 현관을 나섰다가 늦가을 풍경과 마주쳤다.
건너편 집 앞 물푸레나무는 어느 새 이파리를 모두 떨군 나목(裸木)으로 서 있었다. 판화 같은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그믐달은 잘 익은 노란 바나나를 떠올리게 했다. 남쪽 하늘에 낮게 걸린 오리온자리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향한 변함없는 그리움인 양 밝게 빛났다. 지붕 위로 우뚝 솟은 자작나무 성긴 이파리 뒤쪽에서 카시오페아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아직 새벽 빛이 닿지 않은 북쪽 하늘에는 북극성과 큰곰자리가 사이좋게 자리했다. 검푸른 남동쪽 중천에는 화성이 찬란한 빛을 발했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박혀 있는 하늘을 보느라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시카고의 늦가을 바람이 불어왔다. 소슬바람으로 부르기엔 이른, 따뜻한 온기가 묻어 있다. 느릅나무 높은 가지 끝에서 노란색 단풍으로 물든 이파리 하나가 소리도 없이 낙하했다. 생의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듯, 좌우로 몸을 흔들며 천천히, 천천히 떨어졌다.
아직은 이른 시각, 두 어 집 떨어진 이웃집 차고 문이 열리더니 가벼운 자동차 소음과 함께 부지런한 이가 일터로 나간다. 차창을 내린 그가 엷은 미소와 함께 가벼운 손인사를 건넨다.
집으로 들어와 신문을 펼치니 기분 좋은 종이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전날 영국
런던에서 열린 탬파베이와의 경기서 승리한 시카고 베어스 선수들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다. 유쾌하고 상쾌한 아침이다.
#. 독재자의 죽음, 반복되는 자연 재해, 내일을 알 수 없는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 위기,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으로 표현되는 1% 의 가진 자들에 대한 99%의 갖지 못한 이들의 분노, 1930년대 대공황에 비견되는 오랜 경기 침체….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밝고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찾기 힘들다.
우리들 삶에 있어서 행복은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행복의 정의는 각자의 상황이나 시대적·사회적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수학이나 과학 공식처럼 분명하게 규정하기도 힘들다. 또 이를 외부에서 찾는 사람도 있고 내부에서 찾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철학자나 종교지도자 뿐 아니라 평범한 이들도 끊임없이 행복의 정의를 좇곤 한다. 힘들고 슬플 때면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한 없이 즐겁고 만족스러울 때는 자신이 정말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다.
삶의 대부분을 절대 권력과 부로 채웠다가 비참한 종말을 맞은 카다피의 뒷모습을 통해 행복의 의미를 자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