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서는 예배를 마치고 다들 모여 밥을 먹는 모양이다. 내가 나가는 교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밥을 먹어본 게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친교하는데 나만 빠질 순 없으니까 식당에 가긴 가는데 그냥 커피나 보리차를 마신다. 배도 고프지 않느냐고, 어떻게 음식을 보고도 먹을 생각을 안 하냐고 사람들은 무척 궁금해한다. O씨는 이죽거린다. 고고한 척, 우아한 척 하려고 밥을 안 먹는 거라고. 나는 그냥 웃을 뿐이다. 사실은 배가 고프지 않아서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에 가기 전 미리 밥을 먹었으니까. 최근에 들어서 속이 비면 손발이 떨리는 증상이 생겼다. 그래서 속이 비기 전에 미리 뭐라도 조금 주워 먹는다. 라면 반개라도, 찬밥 한 술이라도.
속 비면 손발 떨리는 증상이 생긴 건 배가 조금 찼다 싶으면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지면서 부터다. 예전엔 배가 잔뜩 불러도 입맛이 당기면 계속 꾸역꾸역 먹었었다. 나중에 속이 거북해서 소화제를 먹을 망정 입에 맞는 음식은 그릇 밑바닥을 보아야 직성이 풀렸던 거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아무리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는 음식이라도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식욕이 나지 않아 숟가락을 놓고 만다. 그냥 물러나기 아쉬운 생각에 두어술 더 떠보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두어달 전, J씨 아들 결혼식에 가기 위해 대절한 버스를 탔을 때 김밥 한 줄씩을 받았다. 서둘러 오느라 아침들을 먹지 못했을 터이니 김밥으로 요기를 대신하라는 혼주 측의 배려였다. 유독 김밥을 좋아하는지라 앉은 자리에서 반줄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나는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단지 김밥 반줄 먹었을 뿐인데도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기에. LA에서 특별히 맞추어 왔다는 온갖 산해진미를 그냥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다. 오후 늦게 새크라멘토로 돌아오는 버스 안, 그제서야 배가 슬슬 고팠다. 아침에 먹다 남은 김밥 반줄을 마저 먹는데 얼마나 억울해야지. 남들은 배 두드리게 양껏 먹고 돼지고기니 떡이니 남은 음식을 잔뜩 싸가지고 가건만 왕복 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참석한 결혼식에서 내가 얻어먹은 거라곤 김밥 한줄이 다였으니 말이다.
지난 주 C씨 딸 결혼식에 가서도 그랬다. 아침에 먹은 거라고는 우유에 탄 시리얼 조금이 전부였었는데 이게 곡물이라서 그런지 오후 늦게까지 든든했다. 그래서 결혼식만 보고 밥도 먹지 않고 돌아왔다.
예전부터 나는 뷔페 식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접시를 들고 왔다갔다 해야 하는 게 귀찮아서이기도 하지만 갈 때마다 과식을 해서이다. 적당량만 먹자고 다짐을 하고 가지만 막상 눈 앞에 펼쳐진 음식을 보면 절제가 되지 않았다. 먹고 먹고 또 먹고, 목구멍까지 차도록 먹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은 아이스크림과 과일까지 입가심으로 먹고 나와야 본전을 찾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요즘은 예전처럼 많이 먹히지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 서너가지 가져오지만 그마저도 채 다 먹지 못한다. 위에 얘기한대로 일단 배가 약간 부르다 싶으면 더 이상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다.
체중 감량이 인생최대의 과제라는 A씨는 내가 부럽단다. 자기도 나처럼 배부르면 숟가락을 딱 놓을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단다. 글쎄, 과연 이게 부러운 일일까. 당사자인 나는 늘 손해보는 기분이고 뭔가 큰 거 하나를 잃고 사는 기분이다. 인생의 가장 큰 재미가 먹는 재미라는데, 그리고 우리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데 밥심을 잃어버린 나는 늘 비실비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