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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의 길] 산타페에서<하> 오키프와 나의 캔버스

김아타(사진작가)

이제 내가 오키프를 만날 시간이다. 산타페는 밤과 낮의 세상이 있다. 낮은 태양이 세상을 하얗게 조각하고, 밤은 우주가 다가오는 화려한 별들의 잔치가 있다. 별들은 수시로 하늘을 가르고 나는 그대로 별이 된다. 오직 자연만이 존재하는 이곳, 바람이 잠시라도 길을 잃으면 인간은 졸지에 무아의 세계가 된다. 아 - 무 - 것 - 도 - 없 - 다. 오직 자연만이 있다. 그 속에 내가 있고, 오키프가 있었다.

산타페의 태양은 세상의 모든 물기를 말려버릴 듯이 맹렬하다. 태양은 소금을 만들지만, 모든 것을 삭혀 버린다. 하얗게 삭은 오브제는 그녀의 캔버스 속으로 들어 왔다. 자연은 캔버스에 그림자로 남는다. 젖은 물감이 마르는 시간, 하루가 내리고 다시 하루가 열리면 산타페의 모든 것들은 오키프의 캔버스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한다. 그녀는 그렇게 산타페와 함께 살다가 산타페가 되어 화려한 여행을 떠났다. 그녀가 그렸던 천국의 계단은 고스트랜치의 작은 집 벽에 기대어 있었다.

차마의 구름은 서서 걸어온다. 2007년 11월, 나는 인디언의 영적 지도자와 대화를 하였다. 문명세계에 길들여진 나의 사상과 그들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인디언보호구역을 방문하였고, 마지막 남은 그들의 리더를 만났다. 90이 넘은 그녀는 말했다. “문명이 모든 것을 가져갔다”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유일한 말이다.

인디언의 전설은 어디가 우리와 닮았는지 알 수 없는 향수를 불러온다. 록그룹 ‘레이더스(The Raiders)’의 “인디언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은 젊은 날, 뜻 모를 가사를 읊조리게 하는 정서가 닿아 있었다. 2010년 6월, 당연히 나의 캔버스는 인디언, 그들의 영혼을 기억하기 위하여 인디언보호구역으로 갔다. 고스트랜치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뉴멕시코의 차마라는 인디언보호구역에 캔버스가 서 있다. 아름다운 평원,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흙은 부드럽고 곱다. 한라산보다 한참 높은 평원에는 저수지보다 작지만 필요한 만큼의 물이 여기저기 고여있다. 고지대의 나무들은 나긋나긋하다. 캔버스는 평원을 내려다 보는 높은 산 위에 수호신처럼 혹은 전사처럼 겸허하게 서 있다.

영원한 미스터리, 하얀 날개를 폈다. 시대는 달랐지만, 자연은 변하지 않았다. 몇 마리의 독수리가 하늘을 날고, 바람은 구름을 서서 걸어오게 한다. 자연은 그대로이다. 인디언, 그들의 영혼은 아름다운 자연을 먹고 풍성하게 익었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았던 고스트랜치와 인디어보호구역, 내가 이곳에 캔버스를 새운 이유이다. 영화 ‘내 심장을 운디드니에 묻어 다오(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2007)’는 인디언들의 처절한 역사를 다룬 역작이다. 눈보라가 치는 그 겨울 날, 한 그루의 나무 옆에 서 있는 추장의 처연한 모습은 한없이 약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자연이 야만의 문명에 눈물을 내 주었던 인디언, 그들의 역사는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하여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는 시애틀 추장의 편지로 폭력과 야만의 문명세계에 절정의 화두를 던진다. 시애틀 추장의 명문은 소유의 개념보다 생명의 가치를 우선했던 솔로몬의 재판처럼 자연이 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인류사의 보고이다. 역사는 그렇게 길들어져 갔고, 추장의 역사는 땅에 묻혔다.

오늘도, 그 곳에는 눈이 내렸다. 뉴멕시코의 겨울 눈은 삽시에 환상의 세계로 만든다. 눈은 하얀 캔버스에서 마지막 탱고를 추며 죽어서 산다. 눈은 세상 모든 것들을 환희로 만든다. 겨울 내내 무시로 오는 눈은 하얀 캔버스를 살아있는 전설로 부활시킬 것이다.

나는 다시 호흡을 고르고 고스트랜치로 가야 한다. 고스트랜치,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 위대한 자연은 성스러운 땅 산타페가 된다. 나는 한줌의 흙을 호주머니에 담으며 기억한다. 지난 6월, 고스트랜치를 마주보고 있는 작은 언덕, 오키프가 매일 캔버스를 세웠던 그 곳에 나의 캔버스를 세웠다. 해가 뜨면 붉은 언덕은 수시로 장관을 연출한다. 잠자던 사물들은 기지개를 켜고 태양은 너와 나를 가리지 않고 훑고 지나간다. 해가 지는 산타페의 풍경도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키프는 그것을 말 대신 그림으로 그렸다. 해질 녘, 오키프의 붓질은 빨라졌고, 구름이 된 노을 빛은 나의 캔버스에서 영원히 잠든다.

산타페, 뼈 속을 파고 들던 새벽의 한기는 모든 것을 얼어 붙게 한다. 캔버스는 해가지면 얼고 해가 뜨면 몸을 푼다. 화려함 뒤에 있는 인고의 순환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5개월이 지난 캔버스는 미니멀의 극치, 백색의 추상을 그리고 있었다. 이 또한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이 시간 자연의 붓질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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