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는 1편만한 속편이 없다는 통념이 있다. 통념에는 속단의 폐해가 있긴 하지만 그만한 이유도 있기 마련이다. 91년작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의 속편인 ‘하니발(Hannibal)’은 통념을 깨지 못한다.
‘양들의 침묵’은 동물적 공포와 심리적 공포가 잘 녹아있었다. 연쇄살인범 하니벌 렉터(앤소니 홉킨스)와 그를 쫓는 FBI 수사관 스탈링(조디 포스터)은 정신적 교감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공포를 만들어 냈다. 렉터가 인육을 먹는 동물적 엽기도 심리적 공포에 녹아들었다.
스타일리스트인 리들리 스캇(글레디에이터) 감독은 10년만의 속편 ‘하니발’에서 특유의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샌프란시스코 피어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스캇은 무대를 이태리 피렌체로 옮긴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그리스의 비극이나 오페라의 무대같은 장엄하고 어두운 스타일을 펼친다. 거대한 조각상이 굽어보는 어두운 골목과 광장, 중세건물의 묵직한 질감은 렉터의 악마성을 유화처럼 그려낸다.
오페라 공연 장면에 이어지는 이태리 경찰 파치(지안카를로 지안니)의 죽음은 연극과 오페라를 차용한 스타일을 절정으로 올려놓는다. 현상금 300만달러가 탐나 렉터 체포에 나선 파치가 발코니에서 교수당하는 장면은 비극의 한 장면처럼 장엄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스타일의 질감은 공포로 이어지지 못한다. FBI에 뇌물을 주고 렉터에 복수하려는 버거(개리 올드먼), 총격전의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나 렉터 체포 명령을 받은 스탈링(줄리앤 모어), 피렌체에서 큐레이터로 변신했지만 스탈링의 위기를 느끼고 미국으로 돌아온 렉터. 가지가 많아진 스토리와 인물은 스탈링-렉터의 애증관계가 빚어내는 공포를 약화시킨다.
심리적 공포가 허약해지면서 동물적 공포가 전체를 장악한다. 일그러진 버거의 얼굴과 인육먹는 돼지, 마지막 10분의 엽기가 물과 기름처럼 스타일과 분리돼 떠다닌다.
줄리앤 모어의 연기는 실망스럽다. 그의 연기에서 살인마와의 정신적 교감을 느낄만한 불안과 갈등을 느끼기 어렵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스탈링과 렉터의 관계. 동등한 관계로 설정됐던 1편과 달리 둘은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종속적 남녀관계로 돌아간다. 무방비 상태로 렉터의 팔에 안기거나 가슴이 깊이 패인 드레스를 입고 흐느적 거리는 스탈링의 모습에서 공포의 섹슈앨러티는 잠깐 빛을 발한다.
올해 25편을 개봉하며 옛 영광재현에 나선 MGM의 야심이 ‘하니발’을 출발선으로 삼기는 어려울 듯하다.
9일 개봉. 등급 R. 와이드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