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년 전만해도 한국 프로야구에 관심을 보인 ML 팀은 거의 없었다. 고교 유망주들에게 오히려 더 많이 접근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서며 야구 인기가 시들했다. 2004년에는 불과 233만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런데 2006년에 메이저리그가 느닷없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라는 국제 야구대회를 출범시키며 '반전'의 발판이 이뤄졌다. 야구의 세계화 명목 아래 만든 WBC에서 한국선수들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A조 1위로 2회전에 진출해 멕시코ㆍ미국ㆍ일본 등 강호들을 연파하며 준결승에 진출하는 파란(일본에 패한 뒤 4위로 마감)을 일으켰다. 당시 조.중.동에서도 이들의 선전 소식을 연일 톱뉴스로 다룰 정도였다.
2회 대회 때는 WBC 결승에 나가 일본과 피말리는 접전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2회 연속 선전한 자국 프로선수들의 활약에 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ML 스카우트들은 더 놀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들의 눈은 한국 프로야구를 향했다.
WBC는 ML에도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왔다. 엄청난 광고와 중계권료를 얻은데다 스카우트들이 해외에서 뛰는 최고선수들을 안방에서 마음껏 조사/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은 셈이었다. ML 스카우트 디컨 존스는 "WBC가 외국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데 최고의 찬스를 줬다"고 인정했다.
지난 2009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WBC 결승전을 취재했을 때 경기장 만큼 눈에 들어왔던 곳이 있었다. 바로 홈플레이트 뒤. 정장을 차려입은 스카우트들이 수두룩했다. 이들은 마운드에서 투수가 공을 던질 때마다 레이더 건을 꺼내들어 스피드를 체크한 뒤 노트에 뭔가를 적기 바빴다.
WBC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선수는 일본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다. 그는 1회 대회서 철벽투구를 선보이며 MVP를 거머쥐어 여러 ML 구단들의 관심을 받았다.
당시 보스턴은 그를 영입하는데 총 1억 달러 이상의 거금을 쏟아부었다. WBC를 통해 한 선수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존 슈어홀츠 사장은 "언제 어느 순간에 선수에 대한 믿음이 '팍' 올 지 모른다. 특히 WBC에선 안간힘을 다 해 이기려는 선수들이 많아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휴스턴의 선수담당 관계자 폴 리키아리니는 "경마를 할 때도 말을 보고 베팅을 해야 뭔가 얻는 게 있을 것 아니냐"며 WBC 대회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필리스 스카우트 고든 레이키 역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가장 적은 팀에 가장 관심이 간다"라며 "특히 아시아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 프로야구도 WBC 덕을 분명히 봤다. 맹활약을 펼친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폭증하면서 2009년에 540만명의 관중을 동원했고 올해엔 600만 관중시대를 열었다.
이번 윤석민 일은 WBC가 한국 프로야구에 '양날의 칼'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최고스타들이 한두명씩 "미국 가고 싶다"고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윤석민이 스캇 보라스와 에이전트 계약을 한 것 소속팀 기아에 공개입찰을 요청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