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ng "음악 없인 살 수 없다. 음악을 하며 살거나, 아니면 죽는거다"
LA 한인타운 윌턴 극장서
28일부터 Back To Bass 투어
그룹 활동 5년 솔로 활동 25년. 합쳐서 음악 인생만 30년이다. 그에게 인생의 반은 음악이었다. 세상에 뮤지션은 많다. 하지만 그는 특별했다. 그는 비틀즈도 퀸도 남아있지 않은 지금 영국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최고의 수퍼스타다. 그의 이름은 스팅.
대중음악을 하는 수많은 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로 꼽는 뮤지션이자 새로움에 대한 끝없는 갈망과 실험 정신으로 한 길만을 갔던 아티스트다. 그는 오늘도 그 여정을 쉬지 않는다. 지난달 60세 생일을 맞은 그는 자신의 솔로 커리어 25년을 정리하는 3장짜리 음반 세트 'Sting:25 Years'를 발매했다. 지난달 18일에는 베스트 중에서도 베스트만 추린 'Sting:The Best of 25 Years'도 선보였다. 지난 21일부터는 'Back to Bass'라는 타이틀 아래 전국 투어에도 나섰다.
그는 말한다. "음악 없인 살 수 없다. '음악을 하며 살거나 아니면 죽거나'다"라고. 그에게 음악은 멈춤 없는 시도다. 그래서 오늘날의 스팅을 키운 건 팔할이 '도전'이었다.
스팅의 'Back To Bass'투어는 28 29 30일 총 사흘간 LA한인타운에 위치한 윌턴 극장(3790 Wilshire Blvd.)에서 열린다. 그간 수만명의 군중이 운집할 수 있는 대형 공연장에서의 콘서트를 선호해 온 스팅이 오랜만에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는 2000석 규모의 실내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이번 콘서트에서 스팅은 기타 드럼 등 최소 인원으로 구성된 작은 밴드와 함께 직접 베이스를 연주하며 무대에 설 예정이다. 공연은 사흘 모두 오후 8시에 시작된다. 입장권은 46.50~151.50 달러. 라이브네이션 웹사이트(www.livenation.com)나 중앙티켓센터(213-368-2522)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나를 키운 8할은 '도전'
새로움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정체된 삶이란 날 두려움에 떨게하는 가장 큰 공포다
스팅의 본명은 고든 섬너.
영국 뉴캐슬 인근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우유 배달원인 아버지를 도와 아침 일찍부터 동네를 돌아다니는 게 유일한 낙인 평범한 소년이었다. 가정은 화목하지 못했고 미용사였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직장 동료와 눈이 맞아 가정을 버리고 떠났다. 4남매의 맏이였던 그에겐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세상의 짐이 무거웠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낡고 작은 5줄짜리 스패니시 기타였다. 캐나다로 이민 간 삼촌이 버린 기타를 그는 소중히 아꼈다. 기타를 만지며 꿈을 키웠다.
'뮤지션으로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음악을 하며 돈벌이를 해 렌트비도 내고 끼니도 해결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겠다.'
하지만 그의 주변엔 음악을 가르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그 길을 찾아 갔다. 공연장을 쫓아 다니며 크림이나 지미 헨드릭스의 라이브를 지켜봤다.
버스 차장 막노동 교사 세무 보조사까지 많은 일을 전전했다. 그러면서도 음악을 향한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일과 후나 주말이면 클럽에 가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음악을 했다. 점차 실력이 쌓여갔고 인지도도 높아갔다.
또 다른 도전을 할 때였다. 평생 살던 뉴캐슬을 떠나 런던으로 향했다. 새로운 도전의 터전이었다.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신이 났다.
"새로움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체된 삶이란 상상만 해도 날 두려움에 떨게 하는 가장 큰 공포였다. 계속 전진하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거의 중독 수준이었다."
록 그룹을 만들었다. 이름은 '폴리스(The Police)'. 그러나 결코 남들이 답습하던 록음악의 세계에 머물 순 없었다. 록을 기반으로 레게 재즈 심지어 민속음악까지 접목시켰다. 당시로선 전례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음악이었다. 세상은 그들의 새로움에 열광했다. 평단도 그들의 도전에 경의를 표했다. 팝과 록의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그룹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불과 5장의 앨범으로 총 5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5집 앨범의 수록곡 'Every Breath You Take'은 8주 동안 빌보드 정상을 지켰을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인기에 도취해 안주하고 있어도 좋았을 시기. 그러나 스팅은 또 다른 도전의 길을 간다. '폴리스'를 해체하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도약의 기회를 선택한 것이다.
솔로로서 그는 보다 완벽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길에 매진했다. 전곡을 작사 작곡 프로듀싱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앨범을 자메이카에서 녹음하기도 하고 러시아 민속음악을 접목시키기도 하고 포르투갈어로 모든 노래를 부르는 등의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한 번도 어떤 새로운 음악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로 인해 난 영광의 승리를 거머쥘 수도 완벽한 패배에 늪에 빠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일들은 다 위험을 감수해야 가능한 일들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다른 뮤지션들과의 협연에도 끝없이 도전했다. 솔로 초창기에는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고품격 고감도의 완성도 높은 연주가 그의 관심사였다. 그러다 퍼프 대디를 비롯한 힙합 아티스트들과도 음악적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 모두가 어려워하는 클래식도 그에게는 예외가 아니었다. 자신의 음악을 모두 클래식으로 편곡해 유럽 유수의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아예 정통 클래식 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15세기 고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부르는 음반을 발매하기까지 했다.
영화 OST에 도전한 것은 물론 20여 편의 영화에 직접 출연해 연기까지 선보였다. 누군가는 욕심이 많은 것이라 손가락질했겠지만 그에게는 모든 것이 배움이었다. 매번 그는 새로운 장르와 다른 음악인들의 장점을 클래식의 세계와 영화의 세계를 열정적으로 배웠고 완벽히 마스터했다.
"배움은 끝나지 않는다. '이제 다 배웠네'란 말은 없다. 죽지 않는 한…"
지난달 그는 60세 생일을 맞았다.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한 지 꼭 25년째다. 그 동안 그는 '폴리스' 시절에 이어 11개의 그래미상 트로피를 더 거머쥐었고 5200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가야할 도전의 길이 멀다 말한다.
"얼마 전 토니 베넷을 만났다. 여전히 진심을 다해 멋지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올해 85세다. 나는 이제 고작 60세다. 앞으로 25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다. 알차게 보내고 싶다. 치열하게 바삐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발을 빼고 싶진 않다. 50세가 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가 나에겐 인생 최고의 시기였다. 그래서 다가올 10년이 더 기대된다. 그렇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는가."
스팅. 그는 진정한 실험과 도전의 뮤지션이다.
"나는 항상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내 입장이 전혀 두렵지 않다. 나는 모든 상황 속에 그냥 나 자신을 던지고 싶다."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