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겁도 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아찔할 때도 있다. 남가주 산악회 회원들을 따라 빙벽 등반에 나설 때 역시, 아직 해보지 않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본다는 기대와 “와! 재미있겠다”하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현수 회장 외 7명의 회원들과 함께 길을 떠난 리 바이닝(Lee Vining) 빙벽 등반은 대자연, 그리고 이를 정복해 나가는 산악인들에 대한 경외심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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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4시 길을 나섰다. 산적 같은 겉모습의 시꺼먼 남자들이지만 차창 밖의 자연을 바라보며 섬세한 감상을 표현하는 것이 의외였다. 내일 새벽 오를 빙벽 가까이 있는 리 바이닝 시의 베스트 웨스턴 호텔에 여장을 푼다. 빙벽 등반대들이 자주 찾는다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이나 하듯, 이 호텔에서는 아이스 클라이밍 산악인들에게 특별 할인 요금을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대하는 하얀 눈,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빛, 그리고 휘영청 밝은 달을 그냥 두고 잘 수가 없어 호텔 방문을 나섰다. 코끝이 쨍한 기분 좋은 느낌, 눈이 그처럼 황홀한 빛으로 반짝이는지, 평생 처음으로 깨달았던 순간이다.
주변에 변변한 식당이 없어 무엇을 먹어야 되나 고민스러웠는데 회장님의 아내가 정성껏 싸주신 밥과 삼겹살로 구이를 해먹는 맛은 세상 그 어떤 진미와도 비교될 수 없었다. 이런 메뉴에 빠질 수 없는 소주잔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우자니 순수한 가슴 하나로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대학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에 술이 마냥 달지만 내일 거사를 앞두었다는 이유로 아쉬움을 남기며 잔을 꺾는다.
다음날 새벽 5시, 산의 정상에서도 춥지 않도록 내복부터 하나하나 겹겹이 챙겨 입으며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끓인 북어 국으로 속을 달래며 뱃속 깊숙이 하루 종일 쓸 온기를 저축한다.
아직 주변이 어슴푸레 한 새벽, 살얼음판을 밟듯, 조심조심 운전해 빙벽이 있는 주변까지 왔다. 부족한 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오늘의 출정을 앞두고 진지한 회원들은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 생각을 않는다.
드디어 등반 시작. 다른 선배들은 빙벽 등반에 필요한 갖가지 자재를 실은 탓에 자기 몸무게가 족히 넘을 만큼 부푼 커다란 배낭을 짊어졌다. 스키 탈 때 쓰는 폴을 이용해가며 신발이 푹푹 빠지는 눈 쌓인 겨울 산을 오른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깊게 쌓여 있고 외로운 겨울 나목이 눈을 이불 삼아 서 있는 모습은 의연해 보인다. 때로 오르기 힘든 바위를 지날 때면 앞선 이들이 끌어주는 도움을 받기도 한다. 더불어 사는 삶, 혼자 살 수 없다는 가장 평범한 진리를 산에서는 더욱 진하게 체득한다.
가다가 가끔씩 발길을 멈추고 이제까지 올라온 산길을 내려다본다. 앞만 보고 달릴 때, 우리는 방향 감각을 잃는다. 그래 앞으로는 살면서도 때로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자. 내가 어디쯤 와 있나, 되돌아보는 작업 없이 어찌 살아있다고 할 수 있으랴. 참 이상도 하지. 평균 기온이 영하인 추운 산길인데도 열심히 오르다보니 땀이 흐르며 겉 옷 하나쯤 벗어 던지고 싶어질 정도로 몸이 더워졌다.
드디어 우리가 오를 빙벽이 있는 정상에 다다랐다. 이본 셔나드라는 산악인이 최초로 올랐다고 해서 셔나드 얼음 폭포(Chounird Icefall)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빙벽은 200피트 정도로 에베레스트, 파타고니아 등 해외 원정 등반 계획을 갖고 있는 이들이 현장 실습을 하는 곳이다.
남가주 산악회 회원들은 능숙한 솜씨로 빙벽에 로프를 묶을 보조 도구들을 설치한다. 빙벽 바로 아래, 조금 평평한 바위 위에 회원들의 배낭과 장비들을 한데 모아놓고 우리들의 베이스로 삼았다.
어느새 몸이 식어 바들바들 떨자 한 회원이 버너의 불을 지펴 코펠에다가 눈을 퍼 물을 끓여준다. 산아래 그 편안하고 따뜻한 집을 놔두고 왜 꼭두새벽에 얼음밖에 없는 산꼭대기에 올라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걸까. 그들의 진지한 표정과 태도에서 산행은 심심풀이 땅콩 먹듯 하는 레저가 아니라 고행이며 신앙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혹시라도 떨어질 지 모르는 얼음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밋을 단단히 쓰고 도끼 모양의 아이스 해머로 빙벽을 찍어가며 크램폰을 씌운 비브람 슈즈를 신고 빙벽을 오르는 산악인들을 보고 있자니 암벽 등반에 대한 기초가 하나도 없는데도 왠지 요령을 터득한 것 같아 겁 없이 도전을 해봤다.
초심자의 행운이 작용해 처음 몇 발자국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는데 조금 올라가자 얼음이 너무 단단하고, 손이 곱아져 오는 데다가 후후, 아래서 박 경수 전 회장을 비롯한 대가들이 감나와라, 대추 나와라. 하도 훈수들을 두니까 겁이 더럭 나 중심을 잃고 고꾸라졌다. 생 초보자를 빙벽에 올려놓고 보니 하도 걱정이 돼, 그러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몸은 이미 밧줄로 묶여져 있던 터라 안전하다. 최악의 경우라도 죽지는 않는다.
아! 바로 이것이구나. 죽음이 최악일진데 두려워할 게 무엇이며, 세상 살면서 아웅다웅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 우리는 그 새벽부터 이 난리를 치며 산에 올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산악인들은 먹을 것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암벽 타기를 할 때는 칼로리와 영양분을 농축시킨 파워 바(Power Bar)라는 것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아무리 열악한 상황에서도 먹고 싶은 것은 꼭 먹고 마는 한국인들이 아니던가. 눈을 녹인 물에다가 준비해간 생선 어묵과 가락국수를 넣어 끓인 점심은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다. 특히 손이 곱아들만큼 추운 가운데 후후 하얀 김을 불어가며 마셨던 국물 맛의 감동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할까.
예전에는 어디 놀러 나와 꼭 라면 끓이고 삼겹살 구워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들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해할 수 없어 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우리는 그저 우리 생긴대로 살아야 한다는 우리에 대한 관대함을 갖게 되면서 보다 더 행복해지고 여유를 갖게 됐다.
그들은 왜 토끼 같은 자식, 여우같은 아내를 따뜻한 집에 놔두고 얼음산에 오르는 것일까. 겨울 산에 오르고 보니 그 해답을 깨닫고도 남을 만큼의 감동과 환희를 담아간다.
빙벽 등반을 하러 갔던 셔나드 얼음 폭포가 있는 곳은 LA에서 약 6시간 거리인데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이 아름다워 겨울이 가기 전, 빙벽 등반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 들려볼 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