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사상은 17~18세기의 유럽에서 지적 운동으로 태동한 계몽주의이다. 계몽주의는 신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우주를 이해하고 역사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계몽주의에서 인간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성을 지닌 존재이기에 이성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 짓게 하고 인간되게 하는 특징이 된다.
'계몽'이라는 말처럼 과연 계몽주의는 인간을 미몽(迷夢)에서 깨어나게 하고 그 어리석음을 깨우쳐 완성과 성숙을 향해 나가게 하였는가? 계몽주의는 인간에게 온전한 이성의 빛을 던져주어 편견이나 미망(迷妄)에서 빠져 나오게 하였는가? 이성중심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제시하는 포스트모던 시대(post-modern age)에 우리가 의당 물어야 질문이다.
계몽주의의 사상적 기반은 17세기의 합리주의와 영국의 철학자인 존 로크의 철학사상과 영국의 물리학자인 아이작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관이었다. 기계론적 우주관은 계몽사상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는 신의 초월성과 세상의 수동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은 기계와 같은 것이라 생각하였다.
다시 말해 신이 '관성'이라는 법칙을 통해 자연을 작동케 하신 후 신은 사라지고 대신 이성이 인간과 우주를 매개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데카르트의 이성의 칼은 세상을 분석하기 시작하였고 그 칼날은 신과 인간 사이 인간과 자연 사이를 가르고 서로를 잘라내었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사상에 근거하여 18~19세기의 근대 과학혁명이 일어났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자연에서 많은 지식을 얻어 내는 것이 바로 힘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베이컨은 자연을 '창녀의 은유(metaphor)'로 이해하였다. 창녀는 남성들이 돈으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여성이듯 자연을 그런 식으로 본 것이다.
〔〈【이에 부응하듯 고전 경제학자의 대부인 영국의 애덤 스미스는 얼마든지 공급하면 수요는 응당 있게 마련이라는 자유 지상 논리로 자연을 대하였다. 】〉〕그 결과 인간은 자연을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착취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들의 계몽사상은 이후 문예부흥 종교개혁 활자의 발명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을 가져온 정신적 토대와 동력이 되기도 하였지만 이후 극심한 환경 파괴를 초래한 사상적 원천이 되었다.
계몽사상이 가져온 찬연한 인간 문명이 이 땅에 구축되었지만 한편 그 속에서 자연은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다. 계몽사상이 낳은 날카로운 기계문명의 발치에서 자연은 그 생명의 싹이 무수히 잘려나가고 있다. 자연은 무한정의 자원을 간직하지도 무감각하고 수동적인 대상도 아니다. 인간을 품은 자연의 모태를 해칠 때 인간의 생명씨는 그 메마른 모태에서 조산하거나 사산하고 말 것이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로새서 1:20) 하나님과 천지인(天地人)을 화목(和睦)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자연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자연 소외는 인간 소외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반(反)복음적인 행위임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