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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홈(Home)

Los Angeles

2011.12.2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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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 아들, 상처받은 딸…그들이 돌아간 곳은 결국 가족
홈(Home)
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1606~1669)의 '돌아온 탕자'(1669.부분). 신약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다. 방황 끝에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가슴으로 품는다. 신간 '홈'에서 전개되는 이미지와 겹쳐진다. 집이란 숱한 영혼의 내전을 치른 끝에 완성되는 안식의 공간 아닐까.성탄절이 다가왔다. 행복해야 마땅할 듯한 시간이다. 한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말은 흔하지만 실제 일상에선 흔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는 망가지고 경제는 추락하는 마당에 "메리(merry)"라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된다 말인가. 그저 남들처럼만 성탄절을 보낼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문제는 이 '남들처럼'이다. 남들처럼? 이거 생각보다 어렵다. '남들처럼'이라 함은 통속의 다른 말일진대 그 통속의 기준이란 게 생각보다 높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성탄절과 관련해 당장 떠오르는 통속적 이미지는 집이다. 거실을 밝히는 트리 꼬깔 모자를 쓴 아이들 선물 꾸러미를 든 아버지 성탄절 음식을 만드는 엄마…. 온갖 매체들이 설파해 온 이런 집의 이미지가 현실에서는 왜 아득한 벽처럼 여겨질까.

 메릴린 로빈슨의 장편소설 '홈(HOME)'은 그런 집에 얽힌 이야기다. 모두가 돌아가기를 꿈꾸지만 선뜻 돌아가기도 힘든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찌 보면 지극히 통속적인 가정소설 같다. 집을 떠났던 두 남매가 고향으로 돌아와 늙은 아버지를 돌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비의(秘意)라는 게 실은 이런 통속에 있다. 문제는 통속으로부터 그 비의를 끌어내는 것일 테다. 이 소설이 빛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다. 무대는 미국 아이오와주에 있는 소도시 길리아드다. 보턴 목사의 막내 딸 글로리가 약혼자에게 배신을 당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다.

20년 가까이 소식이 끊겼던 아들 잭도 알코올 중독자가 돼 불쑥 집에 나타난다. 아내와 사별한 늙은 아버지는 남매의 귀향에 감격한다.

 여기까지는 본 듯한 이야기다. 성경 속 '돌아온 탕자' 말이다. 성경에서라면 '그리하여 아버지와 남매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런 건 통속이 아니다. 오히려 신화다. 가족이란 그런 이상향이 아니다.

 소설 속 가족은 수십 년간 감춰져 있던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조심스레 충돌하고 가멸차게 폭발한다. 사실 잭은 어린 시절 사생아를 낳기도 했을 정도로 악명 높았다. 하지만 가족 가운데 누구도 잭이 왜 그런 방황을 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소설은 잭을 중심인물로 설정한 다음 가족의 아픔을 헤집고 치유해 간다. 소설 말미의 뜻 밖의 반전은 그 치유의 강력한 신호다.

이 소설은 그러나 단순한 가족 소설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 이야기를 넘어 사회비판 소설로 외연을 확대해 간다.

 소설에는 1950년대 미국의 사회상이 자주 등장한다. 예컨대 아버지 보턴 목사와 아들 잭은 정치적 문제로 충돌한다. 흑인 시위대 진압 광경을 보면서 잭은 흑인 편을 들지만 아버지는 흑인 을 비난한다. 또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매카시 상원 의원에 대한 언급도 종종 늘어놓는다. 어쩌면 소설의 무대가 된 백인들의 소도시 길리아드는 보수 일색으로 흘렀던 당시의 닫힌 사회상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소설은 '닫힌 사회'로서의 집이 마침내 '열린 사회'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소설 말미에 잭은 또 다시 집을 떠난다. 하지만 그가 떠난 뒤 가족들은 마침내 잭의 사연을 알게 된다. 하여 가족은 화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타인까지 가족으로 품게 된다.

 '홈'은 통속적이어서 아름다운 소설이다. 가족은 빤해서 애잔한 법이니까. 소설에 나오진 않지만 늙은 아버지는 곧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날이 오늘처럼 성탄 전야라면 잭은 어떤 말을 전해올까. 아마도 이런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옮긴다.

 '아버지 그거 아세요 오늘이 성탄 전야라는 거/탄일종이 울리고 있어요/끝으로 제 남은 생의 모든 성탄절을 동봉하네요/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박성우 '친전-아버지께')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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