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주 오래되고 큰 집에 살고 있었는데 자식 농사도 풍년이어서 고만고만한 어린 아이들이 서른 명이나 되었다. 아이들은 날마다 저희끼리 집안에서 어울려 노느라고 완전 무아지경 하루해가 꼴딱 지는 줄도 모르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장자가 바깥 일을 보고 나서 집에 돌아와 보니 그 크고 낡은 집에 불이 나서 대문간부터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구하러 후다닥 안으로 뛰어 들어간 장자는 불이 났으니 어서 빨리 밖으로 나가자고 소리쳤지만 노는 데 정신이 팔린 아이들은 한 귀로 흘려 들을 뿐 전혀 움직이지를 않았다. 다급해진 아버지가 말을 바꾸어 저기 독사가 있다고 소리쳤다. 그래도 마찬가지 무서운 귀신이 나왔다고 겁을 줘도 들은 체 만 체 그 사이 불길은 혀를 날름거리며 점점 더 이쪽으로 타들어 오고 있었다.
이에 장자는 순간적으로 꾀를 내어 아이들을 꼬드겼다. 얘들아! 아버지가 지금 바깥에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멋진 장난감을 사다 놓았다.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다. 누가 훔쳐 가기 전에 어서 가 보자! 그러자 아이들은 귀가 번쩍 앞 다투어 좁은 문을 빠져나감으로써 간발의 차이로 모두 화마의 재앙을 벗어났다.
아버지는 이때 단지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다. 이왕에 줄 바에야 처음에 약속했던 변변찮은 장난감보다 더 좋고 멋진 진짜 수레를 주자. 칠보로 꾸미고 눈같이 흰 소가 끄는 큰 보배 수레를 아이들에게 한 대씩 골고루 나누어 주게 되는데 그만큼 자식들을 차별 없이 크게 사랑하였음이다.
이는 법화경에 있는 이야기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하신 말씀이다. 이 밖에도 불경에는 믿음으로 물 위를 걷는 이야기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 등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듯한 얘기도 여럿이다. 왜 그럴까?
어쨌든 생명 가진 우리 중생들은 모두 이 불난 집의 어린 아이들과 같다. 태어남과 늙음 병듦과 죽음이라는 네 가지 불길이 타오른다. 게다가 늘 근심과 슬픔 괴로움과 번민이라는 네 마리의 독한 화마가 창틀을 타고 앉아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그럼에도 이 눈뜬장님들은 그 여덟 가지 불길에 자기 몸이 휩싸여 타 죽을 운명임을 알지 못한다. 이 순간에도 골똘히 부질없는 장난에 빠져 방바닥에 엎딘 채 오감을 닫고 옆도 돌아볼 줄 모른다.
그 어느 아버지가 자식들이 곧 불에 타 죽을 것임을 아는데 보고만 있을 손가. 부처님은 이런 무지한 중생들을 건지시고자 불난 집의 바깥에 수레 3대를 마련해 놓고 우리를 부르신다. 몰두하던 놀이를 그만두고 당장 뛰쳐나가 차지할 수 있는 수레다. 성문 연각 보살이라는 수레다.
성문의 수레는 직접 부처님의 목소리를 들어 깨치신 분이 만드셨다. 연각의 수레는 삼세의 업과 괴로움의 진리를 이치로 더듬어 깨치신 분 보살의 수레는 이 세상 마지막 중생까지 건지고자 몸을 던지신 분의 수레다. 그리고 이 수레들은 결국 일승 법화의 흰 소가 끄는 보물 가득한 더 큰 수레로 우리를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