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야 속으로 사실 조금 걱정을 했단다. 산속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 3년 전 겨울 이곳 충남 공주의 동곡리 땅을 구입하고 나자 어머니가 속 마음을 털어놓았다. 도시 생활을 서둘러 접기로 결정한 내가 부모를 모신답시고 자신들을 깊은 산속으로 데려갈까 봐 어머니와 아버지는 은근히 걱정했었던 것이다. 노인들에게 산속 생활은 현대판 고려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사실 공주로 들어오기 전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답사한 지역은 강원도였다. 그 가운데서도 태백산맥의 고지대에 속된 말로 필이 꽂혔다. 체질적으로 여름보다는 겨울을 더 좋아하는데다 개발의 손길이 아무래도 덜 미쳐 있을 것 같아서 강원도 산골에 정착하기를 원했다. 겨울이 1년 중 대략 5개월쯤 되는 해발 500~600미터 이상의 고지대를 염두에 두고 강원도에서 적당한 땅을 찾기 위해 수 개월 동안 발 품을 팔았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강원도 땅들은 대부분 내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쌌다. 그래서 반대로 눈을 돌린 지역이 강원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전라남도 해안 지역이었다. 더운 여름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해남.강진 일대를 뒤졌다. 하지만 이 지역은 대다수 일가 친척들이 사는 서울과 너무 멀리 떨어진 게 큰 흠이었다.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살고 싶을 뿐 세상으로부터 내 자신을 단절시킬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통틀어 2년 남짓 주말을 이용해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등 팔도의 땅들을 이리 저리 둘러보러 다니다가 막판에 찾은 게 동곡리다. 바다가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큰 산을 끼고 있는 것도 아닌 이곳 이스트 밸리를 선택하게 된 것은 아이 엄마의 거처와 가깝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아이 엄마는 대전에 살고 있는데 결혼한 지는 4반세기가 다 됐지만 한 지붕 아래서 산 것은 절반도 채 못됐다. 그런 차에 강원도 산골이나 전라도 바닷가로 내가 정착하면 자칫 두 사람이 평생 갈라져 사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이스트 밸리의 현재 땅을 소개받은 뒤 어머니 아버지와 동생들에게도 구경을 시켜줬다. "무해무득한 느낌이 드는 곳이네요. 이런 데가 살기는 좋을 것 같아요." 아이 엄마는 이스트 밸리 땅을 보고서 상당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아이 엄마와는 대체로 주말마다 땅을 같이 보러 다녔는데 이스트 밸리의 땅은 처음에는 나 혼자서만 봤다. 아이 엄마의 표정이 그때까지 봤던 어떤 땅을 대할 때보다 밝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들도 대략 아이 엄마와 비슷한 의견이었다. 터잡고 평생을 살 요량이라면 아찔하게 경치가 좋거나 혹은 바다나 큰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곳보다는 평범한 데가 좋다는 것이었다.
내심으로는 장점도 단점도 없는 곳보다는 뭔가 강렬한 맛이 있는 땅을 원했지만 식구들 모두가 "무난하다"고 얘기하는 바람에 이스트 밸리 땅에 그런대로 애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매물로 나온 이곳 땅이 내가 그토록 원하는 남쪽으로 터를 잡고 있는 게 매력적이었다.
이스트 밸리는 전형적인 한국 중서부지방의 농촌 모습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멋진 전원주택보다는 소박한 농가주택이 자리하면 잘 어울릴 법한 동네이다. 당시 친구들의 평도 나와 비슷했다. 땅을 구입하고 2009년 여름 집 짓기를 끝내기 무섭게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2년 만에 돌아와 3개월째 살고 있는 현재 느낌은 처음 이곳을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천만다행이다. 내가 했던 방식으로 새로운 삶터를 정하는 게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건 땅을 사고 이어 집을 지으면서야 시나브로 깨닫기 시작했는데 일반적으로 권할만한 방법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