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번을 볼때마다 그가 NFL 마이애미 돌핀스 감독이었던 2007년 당시 기자회견이 떠오른다. 그는 대학풋볼 복귀설이 흘러 나오자 "절대 대학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난 프로 무대가 좋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언론은 그를 믿었다. 하지만 그는 다음 날 앨라배마 크림슨타이드와 8년 3200만 달러에 계약 말과 180도 다른 행동을 했다. 당시 대학풋볼 감독 사상 최고액수였다. 미디어가 그의 언론 플레이에 놀아난 것이었다. 그의 몸값도 올려준 꼴이 됐다.
풋볼 팬도 어떻게 그렇게 새빨간 거짓말을 할 수 있냐며 분개했고 ESPNㆍ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등 스포츠 언론들은 일제히 세이번을 향해 융단폭격을 가했다.
그래도 그의 지도력에 대해서만큼은 손가락질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가 이끈 앨라배마는 9일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수퍼돔에서 벌어진 2011시즌 BCS 대학풋볼 전국 챔프전에서 랭킹 1위에 빛나던 LSU를 21-0으로 무참히 짓밟고 정상에 올랐다. 세이번은 최근 3년간 앨라배마에 두 차례 우승을 안겨줬다. 현재 앨라배마에서 그 이상 가는 영웅은 없다.
TV 중계화면을 보면서 한가지 재미난 사실을 발견했다.
2009시즌 패서디나의 로즈보울서 열린 BCS 전국 챔프전을 취재했을 때가 생각났다. 당시 앨라배마가 텍사스를 누르고 전국우승을 차지했을 때 세이번은 회견장에서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누가 기자회견만 봤다면 패장으로 알았을 것이다. 오히려 팀원들에게 게토레이드 세리머니를 맞은 것을 놓고 짜증스런 반응까지도 보였다. '냉혈한'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환하게 웃을 뿐만 아니라 선수들과 풀쩍뛰며 좋아하기까지 했다. 게토레이드 세리머니도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는 "2년 전에도 게토레이드 맞은 걸 좋아했다"며 "하지만 당시엔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가 맞아 넘어질 뻔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에는 선수들이 좀 더 기술적으로 게토레이드 세리머니를 했다. 그걸 받아들이는 내 능력도 좋아진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세이번은 BCS 시대가 도래된 이후 전국 우승을 세차례 차지한 최초의 감독이다. 그는 2003시즌에 LSU를 우승으로 이끌며 첫 번째 BCS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듬해 팀을 떠났는데 그의 후임으로 들어온 게 바로 이번에 맞붙은 레스 마일스 감독이다. 마일스는 2007시즌에 LSU의 우승을 이끌며 명장 대열에 합류했다. 세이번으로선 그와 함께 대학풋볼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마일스에 당했던 정규시즌 패배(지난해 11월 5일엔 LSU가 9-6으로 연장승)를 챔프전 무대에서 설욕했다는 점에서 더욱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도 BCS 타이틀 경기 최초의 영봉승으로 이겼으니 '냉혈한'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세이번도 이를 숨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이번 우승은 좀 더 특별한 느낌이다"며 웃었다. 반면 패장 마일스는 "이렇게 질 줄은 몰랐다"며 고개를 떨궜다.
세이번은 '스타워즈'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 감독에게도 특별히 고맙다는 말을 전해 눈길을 모았다. 경기 전날 그는 팀원들을 데리고 루카스가 제작한 영화 '레드 테일스(Red Tails)'를 봤다. 레드 테일스는 세계 2차 세계대전 때 투입된 앨라배마 출신의 흑인 공군부대를 그린 영화. 선수들이 영화를 보고 크게 감명 그 에너지를 경기장에 뿜어낼 수 있는 동기유발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풋볼은 그 어떤 스포츠보다 감독의 역량이 십분 발휘되는 게임이다. 이날도 그의 지도력이 곳곳에서 발휘됐다. 필드골 포메이션 속임수. 퍼스트 다운부터 깊숙한 패스. 페널티는 딱 한 번. 여기에 질식 수비까지. 이번 BCS 전국 챔프전은 세이번이 대학 스포츠 최고의 승부사임을 다시 한 번 만천하에 알린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