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변신 따라 운명 갈린 필름업계 코닥 디카 최초 개발했지만 필름 안주 후지 기존의 기술로 다른 사업 눈돌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였던 코닥이 파산을 신청하면서 코닥 몰락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필름 업계의 두 거인이었던 코닥과 후지필름의 사업전략비교와 코닥이 무너지게 된 원인에 대한 분석을 게재했다.
코닥은 기술의 최첨단을 선도했던 20세기 최고의 기업으로 꼽힌다. 전성기였던 1976년에 코닥은 미국 필름 시장의 90%, 카메라 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코닥은 승승장구했다. 1999년 코닥의 세전이익은 25억달러 였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코닥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애플과의 지적 재산권 분쟁으로 현금을 확보한다는 계획마저 좌절로 돌아가자 코닥에게 남은 것은 파산신청 밖에 없었다. 코닥 파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코닥이 1975년 발명했던 디지털 카메라. 필름이 필요없는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자 코닥도 급속히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화에 맞서서 회생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런 의견은 코닥의 오랜 라이벌인 후지필름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 살펴보면 더욱 설득력을 얻게된다.
래리 매티슨 전 코닥 사장에 의하면 코닥은 1979년 내부 보고서를 통해서 필름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후지필름도 비슷한 시기에 다른 사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지 필름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빠른 대책수립과 과감한 행동력이었다.
필름산업이 사형선고를 받자 후지 필름은 일본회사로서는 드물게 빠른 대책 수립에 나섰다. 후지필름의 디지털 시대에 대한 대책은 기존의 기술을 이용하되 완전히 다른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필름 보존을 위해 개발한 여러 화학약품들을 이용해 화장품 사업을 전개하는 등 신사업들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신사업 중 가장 성공한 것은 LCD에 들어가는 광학필름 제조. 2000년부터 40억 달러를 투자한 끝에 후지필름은 시장점유율 100%를 달성했다.
이 과정에서 과감한 조직개혁도 있었다. 후지필름은 구조조정을 통해서 18개월간 33억달러의 비용을 절감하는데 성공했다. 몸집을 줄인 뒤에는 공격적 인수합병에 나섰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90억달러를 들여 40여개의 회사를 인수했다.
이에 비해 코닥은 대책 수립이 늦었다. 코닥은 기술력으로 시장을 선도하던 회사였다. 모든 일에 만전을 기하여 완벽을 추구하는 회사문화 덕분에 항상 기술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완벽주의가 늑장 대응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카메라를 저렴한 값에 공급하고 비싼 필름을 구입하게 만든다는 기존의 사업 전략을 탈피하는 것 또한 너무 늦었다. 코닥은 마치 빙하기가 올 것을 알면서도 몸집을 줄이지 못하는 공룡과도 같았다.
야심차게 준비한 신사업들 또한 철저하게 실패했다. 화학약품을 이용한 제약산업은 대표적인 실패작이었다. 그 후로 프린터 사업과 디지털 프린팅 사업에도 진출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시게타카 코모리 후지 필름 CEO는 "코닥은 디지털 기업으로의 변화를 꾀했지만 디지털 시장은 코닥같은 큰 기업을 지탱할만큼 큰 시장이 아니다"라고 코닥의 신사업 전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코닥을 지금의 애플과도 같은 회사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기술의 최첨단에서 혁신을 주도하던 코닥은 결국 혁신을 하지 못해서 무너졌다. 코닥의 파산은 기술력을 앞세운 회사들이 장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극명히 보여주는 반면교사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