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널리스트 제임스 하킨에게 다국적 유통업체 울워스(Woolworth)가 2009년 파산한 것은 예사로운 소식이 아니었다. 런던 쇼핑가의 상징으로 통했다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 온갖 물건을 구입한 향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그 해 영국 최대 음반업체인 자비(Zavvi)도 문을 닫았다. 미국의 대표적 ‘공룡 기업’중 하나인 제너럴 모터스(GM)도 그 해 6월 파산했고, 7월에는 한국인에도 익숙한 세계적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폐업 대열에 합류했다.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가디언 등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저자 하킨은 글로벌 경기 침체를 전후해 운명이 뒤바뀐 각종 사례를 취합해 그 속에서 하나의 트렌드를 읽어내고 있다. 책 제목인 ‘니치(niche·틈새)’를 흥망과 성쇠를 가르는 변화의 키워드로 지목했다. 저자는 틈새 시장(니치 마켓·niche market)이란 용어로 많이 알려진 니치에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미래의 기업과 개인은 물론 정치와 문화 등 거의 모든 방면에서 새롭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개념으로 격상시켰다.
20세기 정치·경제·문화의 주요 흐름은 사회의 중간층을 형성하는 대다수 대중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집중됐으나, 대중의 기호가 세분화되고 까다로워진 21세기는 그런 흐름이 일방적으로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진단이다. 대중의 기호가 잡식성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커피만 해도 전 세계 커피를 취향 따라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시대다. 맥스웰 커피로 통하던 시대와 비교할 수 없게 다변화된 것. 스타벅스의 성공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며, 작고 별난 전문점이 속속 생겨나 특수 매니어들의 입맛을 충족시킨다. 나이·성별·교육·수입·인종을 중심으로 대중의 평균적 기호를 파악하는 통계조사는 잘 맞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할리우드에서도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닌 ‘니치버스터 시대’를 예견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딱히 다른 즐길 거리가 없어서 선택했던 영화와 텔레비전 등에 충성을 바칠 대중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케이블방송 ‘홈 박스 오피스’(HBO), 온라인 정치 뉴스 ‘폴리티코’, 온라인 기후 소식지 ‘클라이메트와이어’ 등이 선보인 개성 넘치는 기획을 니치버스터 전략의 성공사례로 꼽았다.
책에는 미국과 영국의 사례가 대부분이지만 우리 현실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난 거대 정당에 대한 불신, 사회참여의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잡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보면 이제 니치가 대세를 이루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니치 시대의 성공 전략으로 창조적 상상력을 꼽는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충성스러운 매니어그룹을 만들어가길 권유한다. ‘다르게 생각하라’라는 깃발 아래 수백 만의 ‘종교적 팬’을 거느린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그런 경우라고 했다.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면 어느 누구의 마음도 얻지 못한다”는 저자의 결론이 핵심을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