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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듯 낯선 중국식 샤부샤부 훠궈 火鍋

Los Angeles

2012.01.3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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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고 싶은 게 있다.

푸드섹션 담당을 맡고 있지만 사실 입이 짧다. 비위가 약하고, 싫어하는 것도 많다. 특히 냄새에 민감하다. 산낙지는 좋아하면서 곱창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양고기는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다.

'훠궈(火鍋)' 취재를 하겠다고 했을 땐, 당연히 쇠고기와 새우를 염두에 뒀다. 매콤한 국물을 쏙 빨아드린 통통한 새우살과 얇게 저민 쇠고기의 고소한 맛, 시원하게 우러난 국물과 칼칼한 국수 생각에 조금 들떴었다. "훠궈 먹는다고? 당연히 양고기 먹으러 가는 거지?"하는 압박(?) 섞인 선배의 말을 듣기 전까진 좋았다.

사실 중국식 훠궈에선 '양고기가 진국'이라는 것쯤은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었다. 싫었을 뿐이다. 창피하게도 지금껏 이색요리를 탐방하면서 양고기는 무조건 피해왔다. 세계 최고급 요리군에는 양고기 재료가 많은데…. 언제까지고 피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도전을 결심했다.

찾아간 곳은 샌개브리얼 밸리의 Happy sheep shabu & grill (喜羊羊內蒙古火鍋). 가게 이름에서부터 양고기의 냄새가 풍긴다. 재밌는 건 LA차이나타운에선 훠궈를 맛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인타운 유명 중식당에 문의해본 결과 정통 중국요리는 차이나타운에서 찾기 힘들단다.

자리에 앉자마자 웨이터가 다가온다. '아직 못 정했는데….'하는 눈으로 바라보니 중국말로 쉴새없이 말을 늘어놓는다. 할 수 없이 주문은 함께 간 친구(대만계)가 맡았다. 그 친구에겐 무조건 홍탕.백탕 두 개짜리 훠궈로 해야한다고 말해뒀다. 쇠고기와 양고기 버섯 채소 어묵 등도 가득 주문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태극 무늬의 훠궈 용기가 눈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한쪽은 검붉고 다른 한쪽은 설렁탕과 흡사했다. 냄새는 인삼과 한약재를 듬뿍 넣은 삼계탕과 비슷하다. 오래된 한약방에 가면 맡을 수 있는 쿰쿰하고 쌉쌀한 향. 웨이터가 코를 킁킁대는 나에게 "하오샹마?"하고 묻는다. 싱긋 웃으며 "하오샹(好香.좋은 향기)"이라고 답했다.

거의 끓여서 나오기 때문에 불을 조금만 올려도 훠궈는 팔팔 끓었다. 홍탕과 백탕 모두 같은 육수를 쓰지만 들어가는 재료는 달라보였다. 본적도 없는 구슬 같은 한약재부터 월계수잎 쥐똥고추까지 한약재가 탕의 절반은 차지했다.

끓일수록 탕의 색깔은 탁해졌다. 배추와 버섯을 살짝 찢었다. 보통 쌈밥 집에서도 잎사귀로 나오는데 파란색 배추가 통째로 나와서 조금 놀랐다. 하얀 부분을 적당히 접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심이 단단해서인지 5분 정도 걸렸지만 달콤한 맛이었다. 버섯도 육수를 흡수 무르지만 아삭함이 살아있었다. 힘들게 씹을 필요도 없이 후후 불어 먹었다. 맛있다.

이곳에 온 목적을 실행할 때가 왔다. 양고기와 쇠고기 두 접시가 놓였는데 어떤 것이 양고기인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 지금까지 봐온 양고기는 양 갈비 소테나 케밥 같은 것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는데 이 양고기는 차돌박이처럼 얇게 저며져 있다. 식당 내에 고기냄새가 진동해서인지 냄새 확인이 불가능하다. 두 접시 모두 비슷한 핑크색. 백탕 속에 고기를 넣고 휘저었다. '아 다행이다'하는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쇠고기 고소한 맛이 진하다. 다른 소스를 찍어먹지 않아도 간이 잘 잡혀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소스는 모두 4개. 그 중 2개는 땅콩과 참기름을 버무린 느끼한 소스였고 나머지는 이상한 향이 나는 핑크색 소스였다. 매실과 실란트로를 으깨 된장처럼 만든 셈이다. 모두 쇠고기를 찍어 먹어봤지만 오히려 고기의 고소함을 죽이는 역할만 한다. 아무것도 묻히지 않고 먹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양고기는 홍탕에 휘저었다.

조금이라도 자극적인 고추 맛에 의지하고 싶었다. 씹는 순간 양고기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진 않았다. 종잇장처럼 얇은 양고기는 맛도 냄새도 희미하다. 모르는 사람들은 쇠고기나 돼지고기처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양고기를 극복했다곤 말할 수 없지만 양고기 훠궈는 다시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다. 친구의 강력추천으로 넣은 푸저우 완자(福州魚丸)도 맛봤다. 신기하게도 하얀 생선살을 베어 물면, 간장에 졸인 듯한 고깃덩이가 나온다. 일거양득인가. 솔직히 조금 짜다.

훠궈의 중심은 국물에 있다. 탕에 고기와 채소를 담그는 것은 육수를 더욱 육수답게 하기 위해서다. 뽀얗게 올라온 백탕은 삼계탕과 설렁탕을 섞어놓은 맛이다. 익숙하다. 여러 번 우려낸 사골육수에 한약재와 대추 등을 넣고 삶아, 노란 기름이 떠다니는 그 맛. 마시기 전에 예상되는 맛이다.

반면 홍탕은 매력적이다. 기름기가 많아 느끼할 것 같지만 의외로 시원하다. 삼계탕과 설렁탕에 고춧가루와 라면수프를 넣고 끓인 맛이다. 맵다. 국자로 탕을 뜰 땐, 깊숙한 곳에서 들어올려야 한다. 위부터 살짝 떠서 먹었더니 혀가 마비될 정도다. 너무 맵다. 술 많이 먹는 한인 아저씨들을 해장 음식으로는 최고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약재의 풍미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보통 먹는 삼계탕의 인삼향과 맛의 50배 정도다. 개인적으론 홍탕이 좋아 계속 마셨더니 "너 아무래도 오늘 화장실 줄기차게 갈 것 같다. 조심하라"며 친구가 겁준다. 맵고 짠맛에 심장이 쿵쾅거려도 계속 마시게 된다. 중독성이 강하다.

훠궈의 마지막은 국수. 국수(細粉絲)는 당면보단 얇고 반짝이는 비늘 같다. 국수를 먹는다는 느낌보단 졸아든 탕에 잡채 면을 비빈다는 표현이 맞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실패하기 어려운 요리이긴 하지만 독특했다. 진한 육수와 향이 오랫동안 남는다. 식사 후, 배꼽부터 매운맛이 올라오는 것을 느껴 중국식 팥빙수로 속을 달랬다. 맵고 시원한 맛을 원하는 이는 꼭 가야 한다. 13억 중국인이 인정한 그 마력의 맛이 궁금하지 않은가. 도전해 보시라.

▶ 주소: 227 W. Valley Blvd., #348, San Gabriel, Ca 91776, (626) 457-5599

◇ 내 마음대로 별점
훠궈는 크게 두 가지다. 하얗거나 빨갛거나. 최근엔 토마토부터 한국식 김치까지 훠궈의 선택이 넓어졌지만 정통 중국 훠궈는 홍탕과 백탕이다. 홍탕과 백탕 모두 시원하고 개운하다. 모든 훠궈는 주문하는 채소나 고기의 양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지만 대체로 20~40달러(2~3인분) 정도다.
① 츠부칭탕궈(滋補淸湯鍋) 별 세개
- 뽀얀 우윳빛깔 백탕이다. 홍탕보단 기름기가 적고 담백하다. 한약재의 풍미가 살아있어 맛이 깊다. 익숙한 맛.
②위엔양궈(鴛鴦鍋) 별 네개
- 원앙처럼 잘 어울린다는 뜻. 백탕과 홍탕을 동시에 맛 볼 수 있다. 짬뽕과 짜장면을 동시에 먹고싶은 그 마음을 이해해준다.
③마라궈(麻辣鍋) 별 세개 반
- 홍탕의 맵고 시원한 맛이 막힌 숨통을 탁 트이게 한다. 해장으로 딱 좋을 듯.
온가족 모인 명절날 즐겨먹는 중국 보양식
◇ What is 훠궈?
훠궈(火鍋)는 본래 큰 솥을 이르는 단어다. 솥에 온갖 한약재와 사골 육수를 팔팔 끓여 고기·채소·해산물·완자·국수 등을 넣어 먹는다. 보통 매콤한 홍탕과 맑은 백탕이 반으로 나뉜 위엔양궈(鴛鴦鍋) 형태로 나온다. 맵고 자극적인 맛을 내는 재료만 다를 뿐 육수는 같다. 명절은 물론, 가족들이 함께 모인 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훠궈는 한국의 삼계탕이나 보신탕처럼 몸의 혈기를 북돋아주는 보양식이다. 대만계 셜리 예(25)씨에 따르면 집에선 주로 백탕을 끓이며, 훠궈솥이 둥근 이유는 '가족'과 '화합'을 뜻하기 때문이다. 중국 본토에선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칼로리나 콜레스테롤이 적고 칼슘·인·아연 등 무기질이 풍부한 양고기가 사랑받는다. 중국 훠궈의 역사는 적어도 1500~2000년으로, 삼국시대부터 즐긴 요리다. 조조의 아들 조비는 솥 안을 다섯 칸으로 나눠 각각 다른 육수를 부어 끓인 오숙부(五熟釜)란 훠궈를 좋아했고, 청나라 건륭제는 1796년 정월 자금성에서 1550개의 훠궈 솥을 걸어놓고 5000여 명과 함께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훠궈의 시초가 몽골 등 북방유목민족으로, 투구에 물을 끓여 갓 조달한 양고기와 채소를 익혀 먹던 야전형 요리란 설도 있다.
먹는 방법·생김새 비슷하지만 비밀은 '육수'
◇ 훠궈 VS 샤부샤부
샤부샤부는 '살랑살랑(しゃぶ-しゃぶ)'이란 뜻의 일본어로 육수에 데치는 동작을 묘사한 단어다. 훠궈와 마찬가지로 이미 만들어진 육수를 끓여가며 고기나 채소를 익혀 먹는다. 일본식 샤부샤부와 훠궈의 다른 점은 육수에 있다. 샤부샤부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육수지만 훠궈는 육수가 온갖 재료들로 꽉 차있다. 고기나 채소를 데쳐 먹을 때에도 젓가락에 이런저런 한약재와 향신료가 걸려든다. 특히 홍탕은 맵기로 유명한 사천의 고추 등을 넣어 오랫동안 우려내기 때문에 혀가 찌릿찌릿할 정도로 맵고, 사람에 따라 속이 쓰릴 수도 있다. 샤부샤부의 육수는 훠궈 보다 기름기가 적어 간장이나 계란 노른자 등 소스를 찍어 먹지 않으면 심심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반대로 훠궈는 땅콩소스인 마장(麻醬)이나 생선 소스인 하이셴장((海鮮醬) 등을 곁들이면 여러 가지 맛이 혼합돼 재료 본연의 맛을 잃는 느낌을 준다. 맑은 샤부샤부 육수는 물처럼 마실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극적인 훠궈 육수는 많이 마시지 않는 편이 좋다. 굳이 훠궈 육수를 마시고 싶다면, 홍탕 한 국자에 백탕 세 국자를 섞는 것이 알맞다. 한약재와 양·뱀·토끼 등 사용하는 재료도 다른 점이다. 훠궈는 때와 장소에 따라 모양도, 맛도 가지가지다.
중국 한 식당에선 단골고객 만들려 마약 넣 적발
◇ 훠궈 뉴스
훠궈의 종주권을 놓고 사천(四川)과 중경(重慶), 성도(成都)간의 싸움은 10년도 넘게 계속되고 있다. 그중 가장 인정받는 곳은 중경. 중경은 전국 100대 훠궈 전문식당 중 상위 20개 가운데 11곳이 몰려있다. 중국요리협회는 중경 훠궈 업체가 5만여 개에 달하고, 중국 각 지역에 3000여 개 이상의 체인을 만들었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중경시(市)를 '중국 훠궈의 도시(中國火鍋之都)'로 임명했다. 홍탕과 백탕을 나눈 태극모양 훠궈는 중경의 대표작이다. 사천도 만만치 않다. 사천지방 마라훠궈(四川麻辣)를 알리기 위해 지난 2005년부터 사천금관훠궈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중국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요리라 기상천외한 훠궈 뉴스도 많다. 지난 17일에는 난징시의 한 식당에서 훠궈에 녹아있는 마약성분인 앵속각(양귀비 껍질)이 적발됐다. 훠궈점 업주는 단속 과정에서 "문을 연지 얼마 안 돼 단골을 확보하려고 넣었다"라며 "맵고 중독성있는 맛을 위해 마약을 썼다"라고 해명했다. 훠궈때문에 일어난 사건·사고도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광둥성의 한 억만장자 사업가가 고양이 고기 훠궈를 먹다 사망했고, 대만의 가오슝지방에서는 일주일에 4번 이상 매운 마라훠궈를 먹어온 20대 남성이 안구 혈관 파열로 병원 신세를 진 바 있다.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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