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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광장] 결혼 왜 하나, 판단력 부족?

New York

2012.02.0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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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듀요 뉴욕지사장
‘결혼은 판단력이 부족해서, 이혼은 이해력이 부족해서, 재혼은 기억력이 부족해서’라는 말이 있다. 다 맞는 말이다. 이혼과 재혼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판단력이 부족해서 하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어제 오후 늦게까지 본사에 보고할 일이 있어 맨해튼 오피스에 있었는데 유난히 다급하게 들리는 전화가 울리기에 받았다. 73년생 의사 딸이 있는 보스턴에 사는 어머님이다. TV에 나오는 듀오 광고를 보고 “구세주를 만난 듯 기뻤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마음이 필자에게도 전달되었기에 전화벨 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렸었구나 생각했다.

혼기에 찬 성공한 아들 딸을 둔 부모님에게서 흔히 듣듯 모든 조건이 완벽한 따님이었다. 예쁘고 공부 잘하고 착하고 고소득이고 거기에다 성실하고 책임감도 강해 결혼하면 이상적인 신붓감이 될 나무랄 데 없는 규수였다.

그런데 단 하나 흠이 있다고 한다. 결혼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한다. 7년 전 약혼한 남성과 파혼 이후로는 남성을 사귈 생각도 결혼할 생각도 없이 강아지 한 마리만 끼고 집과 병원을 오가며 부모 속도 모르고 환자들과 사랑에 빠져 바쁘게만 살고 있다고 했다. 딸이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게 할 묘책을 조언해달라는 말씀이었다. 대답은 간단하다. 판단력이 부족해야 한다. 아니 아예 없어야 한다.

우리 이전 세대는 얼굴 한번 보지 않고도 결혼해서 아들 딸 끊임없이 낳고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잘 살았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결혼 후에는 눈을 반쯤 감고 살아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명언을 몰랐어도 잘 살았다.

필자는 부모와 스승은 무조건 옳다고 믿었던 청소년기를 보낸 덕에 참으로 행복하게 편하게 잘살았다. 여자는 결혼을 26세에 해야 한다며 두 언니 모두 꽃다운 26세에 어디서 구했는지 멋진 형부들과 결혼했다.

직장 생활로 밤낮이 즐겁던 셋째 딸인 필자마저도 결혼이 행여 늦어질까 더도 덜도 아닌 딱 26세에 지금은 내편인지 남의 편인지 모를 내 남편과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 아끼고 사랑하리라’는 지키지도 못할 맹세에 박자라도 놓칠세라 얼른 “네”하고 서약했다.

나는 지금도 부모님께 감사 드린다. 내 짝을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뜰 필요도 없었고 어떤 사람이 나랑 맞는지 안 맞는지 판단할 수고도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서다. 내가 조금이라도 이 사람을 저울로 이리재보고 저리재보고 믿을 수도 없는 내 판단력에 의지했더라면 나는 이 남자와 결혼 안 했다. 아니 못했다. 그리고 영원히 어떤 남자와도 못 했을지 모른다.

한국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는 비중은 2009년 56.6%에서 2040년에는 40.71%로 줄어들거라 예상한다고 한다. 인구의 과반이 싱글인 세상은 어떨까. 그 자연에 어긋나는 세상 모습이 어떨 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너무 똑똑하지 않은가. 모든 걸 미리 예측하고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지 않는가. 기성 세대들이 세상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필자는 72년생 딸을 둔 부모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그 딸이 맹신하는 본인의 판단력으로 결혼을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고.

어느 의과대학에서 실험을 했다. 사람의 몸에 열을 느낄 정도의 고통을 주고 일부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의 사진을 보여 주었고 일부에게는 그냥 고통만 주고 뇌활동을 촬영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훨씬 덜 느낀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혼하면 내가 잘하나 못하나 고우나 미우나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부부가 아닌 가족이 생긴다. 부부는 뭐가 맞니 안 맞니 따지기도 하지만 가족끼리는 서로 맞니 안 맞니 따지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억만금을 벌어도 이렇게 소중한 가족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이 험난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 생각만으로도 심한 물리적 고통마저 잊게 해주는 사랑하는 가족이 공짜로 생기는 일인데 이리 생각 저리 생각해도 남는 장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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