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미에 묻히다
"아들 둘 다 키워놓고 시작된 남편의 딸 타령. 늦은 나이에 어렵사리 갖은 딸은 우리 부부의 기쁨이었다. 임신소식에 남편은 뛸 듯이 기뻐하며 빨간 장미 바구니를 선물했다. 탐스러운 빨간 장미가 새로 태어날 딸처럼 사랑스러웠다. 장미꽃을 예쁘게 말려 거실 한 쪽에 걸어 놓고, 딸이 품 안에 안길 그날을 꿈꿨다. 하지만, 끝내 딸은 내게 오지 않았다.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우리 곁을 떠났다. 장미를 볼 때마다 그냥 그렇게 보낸 딸 생각에 마음이 아파 저려온다. 남들에겐 사랑의 증표일 빨간 장미가 내겐 아련한 슬픔만을 준다 (스테이시 우·풀러턴)."
◇ 개나리는 그리움을 싣고
"10여 년 전, 이른 봄날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얘야, 개나리꽃 활짝 폈다'라며 전화기를 놓지 않으셨다. 화려하진 않지만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꽃. 돌아가신 아버지는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오르막 길 양 옆에 개나리를 심으셨다. 그 냄새, 그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손수 흙을 골라내던 아버지도, 나도 그곳에 없다. 그립다. 어머니는 분명 '보고싶다'는 말을 개나리꽃 폈다는 말로 대신하신 것이다. 개나리 속에 살았던 어린 날의 내가 보고 싶다. 쉰 넘었어도 아빠, 엄마라 불리던 두 분이 너무나 보고 싶다 (김소정·밸리)."
◇ 후리지아 향 가득한 꽃집
"지금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10대의 끄트머리 시절, 난 모든 것이 싫었다. 부모의 한숨 섞인 잔소리도, 친하지도 않으면서 엉겨붙은 친구들도 모두 귀찮았다. 배낭 매고 훌쩍 떠나고 싶어, 이유없이 광주행 버스표를 샀다. 모르는 거리를 방황하는 기분이 짜릿했지만 막차시간이 다가오면서 숨이 막혀왔다. 괜히 터미널 안 꽃집을 서성대며 제자리 걸음만 하던 그때, 누군가 불쑥 내 손을 잡았다. 처음 보는 꽃집 아줌마는 아무 말 없이 후리지아 한 다발을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예쁜 사람은 울상지으면 안 된다고. 내가 지금껏 받은 최고의 위로다 (박새봄·LA)."
◇ Ms. 해바라기
"날 잘 아는 사람들은 항상 해바라기를 선물한다. 노랗고 큼직큼직한 그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은 그저 내가 해바라기를 예뻐서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해바라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고교시절, 나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 꼿꼿하고, 날카로웠다. 딱딱 끊어지는 말투에 친구들은 멀어져갔다. 그때 영어 선생님은 그런 나를 조용히 불러 해바라기 한 송이를 주셨다. '네가 이 꽃처럼 밝고, 평범했으면 좋겠어. 구김 없고, 가시도 없이 따사로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밝게 웃어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김정아·토런스)."
◇ 집사님의 향기나는 기도
"멀쩡하게 살던 2005년, 장애인이 됐다. 매일 밤을 울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샬롬장애인선교회의 최내금 집사님은 나를 위해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향기나는 꽃으로 다가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다. 감사했다. 그분이 중풍·암 등으로 힘들어 하실 때, 나도 받은 만큼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지난해, 집사님은 하늘나라에 가셨다. 하지만, 아직도 그분의 따뜻한 말이 마음에 새겨져 있다. 꽃은 시들어도 그 아름다움은 변치않는다. 감사하다는 말이 그분에게 꼭 전해지면 좋겠다. (김동근·LA)."
◇ 꽃보다 내 친구, 효섭이
"정원을 가꾸는 이유는 단 하나다. 꽃을 보면 힘이 나기 때문이다. 파릇파릇한 새싹, 올망졸망 물기를 머금은 꽃봉오리. 생기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효섭이는 내 오랜 친구다. 전화 한 통에 이역만리 떨어져 사는 나의 기분을 단박에 알아챈다. 예순이 넘었지만 그가 나에게 보낸 편지들을 볼 때면, 아직도 양 갈래 머리 곱게 빗은 여고생이 된 것 같다. 얼마 전 프랑스 어느 유명한 성당에 간 효섭이는 내 이름을 새긴 초에 불을 붙여줬다. 내 대신 소원을 빌고 '보고싶다'는 엽서를 보내왔다. 그는 내 꽃이다. 든든하고 힘이 되는 꽃이다 (성기순·밸리)."
◇어떤 꽃보다 더 아름답던 어머니
"나이가 드니 어머니 생각이 자꾸 난다. 6·25 전쟁 통에 배 고프지 않은 이가 있었겠냐마는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고개를 숙이셨다. 한참 후에 알았다. 어머니가 구걸 아닌 구걸을 하신 것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어떻게 구했는지 묻지않고 허겁지겁 밥을 밀어넣던 내가 미워진다. 어머니는 꾸역꾸역 밥을 먹는 새끼들만 바라보고 숟가락은 들지 않으셨다. 작고, 약해보였던 어머니. 여린 손가락을 벌려 밥을 벌어올 때, 그가 느꼈을 그 마음을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어머니는 가장 그리운 이름이다. 세상의 어떤 꽃도 내 어머니보다 아름답지 못하다 (이예근·LA)."
◇향기 가득한 말 없는 인사
"한동안 24시간 간병인으로 일했다. 환자는 70~80대 할머니로 의식이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누워있는 그에게 1주일에 한번씩 찾아오는 손녀는 사랑, 그 자체였다. 항상 꽃을 들고 오던 손녀는 할머니의 시선이 닿는 곳에 꽃병을 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가 듣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꽃은 화려한 장미부터 쑥갓꽃까지 다양했다. 그가 들고 온 꽃을 온전히 즐기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적막하고 쓸쓸한 그 방에 손녀가 방문하는 날이면 향기가 차고 넘쳤다. 말로 하지 않아도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김부선·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