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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키쉬와 '촉촉·여유로운 아침' Brunch

더스티 (Dusty's Bistro)

솔직히 대단한 건 없다.

크림치즈 바른 빵, 에그 스크램블에 커피 한 잔이다. 이걸 왜 돈 내고 먹느냐고?

사치를 부리고 싶어서다. 다른 날이면 어림도 없을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어서다.

브런치는 어쩔 수 없는 트랜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사람들에겐 일할 수 있는 공간을, 혼자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이들에겐 간편함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부담 느끼지 않을 정도의 가격을 제공한다. 모처럼 맞은 휴일 아침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는 뿌듯함은 덤이다.

신선한 아침 공기 맡으며 좋은 사람들과 빵 한쪽 나누는 그런 소소한 행복, 브런치 한끼의 사치다.

뭔가 대단한 것을 얻은 느낌이다.

시계는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 좋다'가 절로 나온다. 지금 난 이 어중간한 시간에 느긋한 커피향을 맡으며 사람구경을 하고 있다. 평소엔 꿈도 꾸지 못할 여유로움이다. 아직 차가운 아침 공기가 막힌 속을 뻥 뚫어준다.

실버레이크에 있는 더스티(Dusty's Bistro)는 도로변에 있지만 조용하다. 한적한 주택가와 몸을 맞대고 있어 그런지 짙은 회색 빛 카페 건물도 어떤 한 주택의 일부분으로 보인다. 강아지와의 산책 후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는 이 동네 주민(?) 3~4명이 테라스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 한가롭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무도 없다. 카페 내부는 1920년대 멕시코 분위기가 흠씬 풍긴다. 브라운과 레드로 꾸며진 카페 내부와 '부리또'라 쓰인 간판이 그러하다.

"커피 or 티?"하고 웨이터가 묻는다. 정신을 말짱히 차리기 위해 진한 블랙 커피가 절실하다. 메뉴판을 읽고 또 읽어도 특이한 메뉴는 없다. 저녁과 브런치 메뉴가 다른 것도 있겠지만…. 브런치의 정수를 따르기로 했다. 기본적인 프렌치 토스트와 훈제 연어 오믈렛 셰프 스페셜 키쉬(Quiche)를 주문한 후 딱딱한 빵에 오렌지 마말레이드를 발랐다.

브런치의 느낌은 된장찌개에 고등어 구이를 먹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여기에 앉아있는 시간을 몸속에 흡수시킨다는 느낌이랄까. 브런치의 맛은 에그 스크램블이 부드럽다 부드럽지 않다는 것보단 전체적인 분위기와 여유로움을 즐기는 것에 있다.

사실 에그 스크램블이 어려운 요리도 아닐 뿐더러 어떤 깊은 맛 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모든 음식은 한꺼번에 나왔다. 음식 하나마다 샐러드이나 감자튀김 과일 등을 선택할 수 있어 좋았다.

우선 프렌치 토스트는 내가 알던 그 맛이다. 식빵 한 장을 우유에 적시고 계란을 입혀 구워낸 그 맛. 특이하진 않다. 세모로 잘린 식빵 한 쪽에 메이플 시럽을 살짝 뿌리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난다. 진한 커피와 함께 곁들이니 달콤함과 씁쓸함의 조화를 이뤄냈다. 프렌치 토스트 옆에 자리 잡은 과일들은 싱싱했다. 가끔 브런치 카페에 가면 시들시들한 멜론이나 파인애플 통조림이 나와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딸기는 가운데 심이 살아 있어 씹는 맛이 있었고 포도도 무르지 않았다. 파인애플은 생(生)과일로 지나치게 달지도 않고 시지도 않은 딱 좋은 상태였다. 과일의 신선도는 브런치의 생명이다.

훈제 연어 오믈렛도 익숙했다. 연어 살이 고루고루 섞여 짭조름했다. 내 마음대로 맛을 평가하자면 조금 짠 간장 불고기 맛이다. 계란은 매우 보들보들했다. 살짝 부풀어 올라 두툼한 맛도 있고 입안에선 한 순간에 사라졌다. 간장 불고기 한 입 먹고 계란찜 한 숟가락 떠먹는 느낌이다. 병아리를 연상시키는 샛노란 색에 흩뿌려진 살구빛 연어 살은 눈을 즐겁게 한다. 집에서 오믈렛을 만들 땐 잘게 찢은 훈제 연어 살과 양파 버섯 아스파라거스를 넣으면 맛있을 것 같다. 짭짤한 맛이 끝엔 조금 부담스러웠다.

키쉬는 의외였다. '어? 그래 이거야'를 외치는 순간에도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레몬 빛 계란 파이의 뽀얀 속은 괴상한(?) 녹색을 띄고 있다. 지금까지 키쉬를 주문해 성공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포크를 들기가 꺼려질 정도였지만 '셰프 스페셜'이니 믿기로 하고 한 입 크게 꿀꺽. 꽤 딱딱해 보였지만 입에 넣으니 한번에 부스러진다. 달지 않고 담백하다. 계란찜처럼 포근한 맛이다. 브로콜리나 시금치는 형태를 알 수 없이 갈려 특별히 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다만 채소의 풋내는 없었다. 계란 옷을 입어 적당히 달달하고 고소했다. 주문한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다.

든든한 브런치 덕에 점심은 먹지 않았다. 속은 편안했고 왠지 모르게 즐거웠다. 평소에는 지나쳤을 공기 한 줌 모르는 이의 'Hi'가 고맙다. 어느 한적한 주택가의 카페가 여유있는 마음을 선물했다. 이 정도의 사치 때때로 부릴 만 하지 않은가.



▶주소: 3200 West Sunset Boulevard Los Angeles CA 90026 (323) 906-1018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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