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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똑같은 땅인데도 새벽엔 40점, 저녁에는 60점

"그래도 사고 싶은데…." 서울의 지인들이 얼마 전 땅을 보겠다며 마침내 이 곳 공주에 단체로 내려왔다. 이들은 우리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지역에 매물로 나온 토지 서너 곳을 답사했는데 그 중 한 곳에 대해서는 상당히 마음을 빼앗긴듯한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구입에 신중을 기해주기를 당부했다.

시골 땅 매매가 은근히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서너 해전 현재 살고 있는 집터와 텃밭 등을 구입하면서 절감했다. 당시 나름대로 어느 정도 상황과 걸림돌들을 파악하고서 매매에 나섰는데도 그랬다. 막상 집 짓고 농사 지으며 살려고 하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노정됐다는 뜻이다.

한 예로 시골 땅 가운데는 경계가 지적도와 일치하지 않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눈으로 보이는 필지와 법적인 효력을 갖는 지적도 상의 필지가 꽤나 다르다는 얘기이다. 대지 가운데 일부가 공용도로로 이용되는가 하면 지적도 상의 땅은 맹지인데 실제로는 길이 있는 수도 있다.

집을 짓고 살려 한다면 해당 부지가 무조건 길에 닿아 있어야 한다. 법적으로 인정될만한 도로에 접하지 않은 땅 즉 맹지를 사들이면 골치를 썩이게 돼있다. 이번에 답사한 토지 가운데 서울의 지인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땅도 지적도 상으로는 맹지였다.

하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주인이 건축 허가를 받아주기로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땅을 중개하는 사람이나 땅 주인을 믿고 못 믿고를 떠나 이런 곳에 정착하려면 그 과정에서 신경을 엄청나게 소모할 수도 있다.

땅은 또 다양한 시간과 기후 조건에서 보는 게 좋다. 햇빛이 쨍쨍한 날과 비가 오거나 흐린 날 보면 같은 땅이라도 느낌이 전혀 다르다. 서울의 지인들이 첫 눈에 반했다는 땅만 해도 그렇다. 일부러 새벽에 아이 엄마에게 그 땅을 보여줬는데 돌아오는 말이 "100점 만점에 40점이나 줄까 말까"라는 것이었다. 해가 지기 직전에는 아버지를 대동하고 한번 더 같은 땅을 찾았는데 아버지 말은 "낙제점을 겨우 면하는 정도"라는 거였다.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에서 LA나 뉴욕으로 이민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측면도 있다. 나처럼 농사를 목적으로 하든 아니면 전원 생활을 즐기려 하든 마찬가지이다. 일단 땅에 관한 한 가족들 모두가 대체로 만족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염두에 두고 있는 땅을 가능한 새벽 한낮 저녁 등 다양한 시간대에 방문해보는 게 좋다.

또 기존의 시골 동네와 동떨어진 위치라면 모를까 이웃이 근접한 동네에 진입하는 경우라면 '인간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내 경우 대부분의 이웃들과 대체로 잘 지내고 있지만 인접한 한 집 주인과는 육두문자가 오갈 정도로 초기에 험악한 관계에 놓이기도 했다. 지면에 상세히 옮기기는 곤란하지만 이 이웃은 요컨대 "시골에는 시골만의 법칙이 있다"며 나를 윽박질렀다. 논리나 법에 앞서 시골 혹은 동네 특유의 정서가 있다는 이 이웃의 말은 시골 생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귀 새겨 들을 만 하다.

한국에서 현재 하나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탈 도시' 현상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유를 꼽자면 한둘이 아니지만 폭넓게 본다면 그간의 과도한 도시 집중으로 인한 반동으로 봐도 크게 틀린 시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류에 무분별하게 편승하면 호된 곤욕을 치를 수 있다. 시골도 도시와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곳이다. 정착할 시골을 잘 고르는 것은 첫 단추를 잘 꿰는 것과 비슷하다. 우스개 소리로 공항에 누가 마중 나오느냐에 따라 이민 생활이 달라진다는 말이 한 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비슷한 원리로 시골 생활이라도 어떤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전적으로 그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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