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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시골 생활 6개월, 몸은 힘들었지만 희망은 날로 단단해져

Los Angeles

2012.03.2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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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밸리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가시적인 성과물을 만들어냈다. 최근 완성한 길이 10m 높이 1.5m 가량의 축대가 그 것이다. 이 축대는 100개가 넘는 돌덩어리로 쌓은 일종의 석축이다.

돌덩어리 무게는 대략 20~80kg 가량 나가는 것들이었다. 축대를 쌓는데 투입한 시간은 총 30시간 정도였다.

석축은 생전 처음 쌓아봤다. 돌의 조형미를 살리기 보다는 안전성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했다. 석축은 새로 조성한 앞마당의 경계선이자 현재 집이 앉아있는 대지를 밑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오면 비가 적잖게 쏟아질 터이다. 우기에도 집이 자리한 언덕이 끄떡없도록 하는데 무엇보다 신경을 썼다. 돌들이 솜씨 없는 주인을 만나 타고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살리지 못한 게 아쉽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본격적인 우기는 아니지만 3월 들어 봄이 시작되면서 비가 적잖게 내리고 있다. 나흘 가량에 걸쳐 집중적으로 서둘러 석축 작업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4년 전 여름에 집을 지을 때 2인분의 막노동을 약 3개월에 걸쳐 혼자서 소화했는데 당시와 지금의 체력이 똑같지 않은 것 같다. 다행은 지금은 덥지 않아 일을 하기에는 좋다.

그러나 체력이 달리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항암 치료를 위해 서울에 머무르다가 얼마 전 잠시 이스트 밸리 집에 들른 어머니 말로는 내가 잠자리에서 계속 '끙끙' 앓더라는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시골 생활을 시작한지 만 6개월이 흘렀다. 무슨 일이든 신참이면 그렇듯 지난 반년은 정신 없이 지나갔다. 귀국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암 발병이 확인된 어머니 그리고 지난 달 전립선 수술을 받고 엊그제는 척추 수술을 끝냈으며 내달 어깨 인대 접합 수술을 앞둔 아버지 갈수록 아이들처럼 여러모로 손길이 더 더욱 필요한 99세의 할머니…. 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좀 경황이 없을 것 같다.

2009년 미국에서 잠시 서울로 돌아 온 틈을 타서 집을 짓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뒤 지난해 내가 귀국하기 전까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세 식구가 현재의 이스트 밸리 집에 기거했다. 70대 중후반인 부모와 100세를 눈 앞에 둔 할머니 등 세 분이 나름대로 안간힘을 쓴게 역력하지만 집 주변은 당장 손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농사가 원래 그런 거라지만 면적이 500평도 채 안 되는 집 앞밭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밭이며 집 주변은 한마디로 재활용센터 혹은 고물상 같다. 집 자체는 완공된 지 만 3년 정도로 아직도 새 집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집 주변이 워낙 정리가 안돼있다 보니 안팎으로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마당 정리와 축대 쌓기는 우기 수방대책이면서도 동시에 창고와 작업장을 짓기 위한 터 닦기이기도 하다. 자급자족 자연을 흉내 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생활 공간을 단순화하고 효율화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석축을 쌓으면서 무리한 노동을 버텨줄 시간이 내게도 많이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50대도 초반을 넘어 중반으로 달려가는 나이는 일을 벌여 놓기 보다는 벌여 놓은 일도 서서히 정리를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그러나 시골에서 삶을 시작한 게 결과적으로 인생 이모작 형태가 되다 보니 불가분 어느 정도 일을 벌여 놓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않아도 안온한 생활을 꿈꾸며 시골을 택했는데 인생 모드를 전환한 데 따른 수업료 납부는 피해갈 수 없나 보다.

올 한해는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가 될 것 이다. 축대 쌓기로 손목과 손가락 마디마디의 인대가 다 늘어나 지금도 퉁퉁 부어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허리는 그런대로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정도만이라도 내 몸이 올 한 해를 버텨줄 수 있다면 일단은 무난한 출발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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