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한 지 15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타이태닉'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대표작이다. 사람들은 아직도 잭 도슨을 잊지 못한다. 3D로 재개봉되는 '타이태닉'에 대한 감회를 묻자디카프리오는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아마존에 간 적이 있었다.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다니는 현지 사람들을 만났었다. 그들마저 나에게 '타이태닉'이야기를 하더라. 과장이 아니다. '타이태닉'에 사로잡혀 있진 않다. 하지만 '타이태닉'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닌다."
'타이태닉' 속 디카프리오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타이태닉 3D'를 통해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15년 전 디카프리오의 모습이 스크린에 영사되면 객석에서는 '와'하는 탄성까지 터져나오기까지 한다. 그 반응에 고무된 듯 캐머런 감독은 최근'타이태닉'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캐스팅했던 당시의 비화를 살짝 공개하기도 했다. 그가 털어놓은 뒷얘기는 이렇다.
맨 처음 '타이태닉'을 위한 캐스팅 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캐머런 감독의 관심 밖 대상이었다. '길버트 그레이프'와 '배스킷볼 다이어리'를 보긴 했지만 그에 대해 큰 매력을 못 느꼈던 터였다. 그 때 마침 누군가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본 테이프 몇 개를 가져왔다. 아직 편집도 되지 않은 촬영 장면 일부였다. 영상을 본 캐머런 감독은 거기서 디카프리오의 완전히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그만의 에너지와 파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캐머런 감독은 기억한다.
서둘러 디카프리오와 미팅을 잡은 날 캐머런 감독의 사무실에는 평소 그의 곁에 얼씬도 않던 경리 직원과 비서들 빌딩 관리인까지 찾아 와 어슬렁댔다. 모두 디카프리오를 보기 위해 모인 여성들이었다. 캐머런 감독의 표현을 빌자면 모두가 '레오매니아'들이었던 셈. 그는 "여기서 뭣들 하는 거야. 이건 캐스팅 미팅이라고!"하며 크게 소리칠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고 한다.
당시엔 먼저 캐스팅됐던 케이트 윈슬렛도 와 있었다. 배우들 간의 화학작용을 보기 위해 캐머런 감독이 그녀를 일부러 호출했던 것. 감독은 디카프리오에게 2페이지 분량 가량 되는 대본을 주며 리딩을 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디카프리오는 '읽기 싫다'며 고집을 부렸다. 새파랗게 어린 디카프리오가 괘씸했던 캐머런 감독은 망설임 없이 '그래? 그럼 케이트와 나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나 마저 나눠야겠다'며 자리를 뜨려 했다고.
그러자 디카프리오가 말했다. "잠깐만요. 이걸 안 읽으면 아예 기회조차 없는 건가요?" 캐머런 감독은 즉시 대답했다. "없지 그럼. 이건 엄청나게 비싸고 스케일도 어마어마하게 큰 영화야. 내 명줄도 달려있다고! 그러니 내 두 눈으로 봐야 해. 그렇지 않으면 기회는 없어." 그러자 디카프리오는 몸을 배배 꼬고 한숨을 푹 쉬며 "에이 알았어요"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디카프리오가 작정하고 그 2페이지 대본을 읽어 내려가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된다. 캐머런 감독은 "레오는 엄청나게 말도 안되게 멋있었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이제 급해진 건 캐머런 감독 쪽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무리 돈이 많이 들더라도 디카프리오를 데려와야 한다고 스태프들을 다그쳤다.
막상 디카프리오는 '별로 흥미가 없다'며 속시원한 결정을 안 했다. 캐머런 감독은 그를 설득하는 데 2개월을 할애했다. 그의 거절 이유도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러다 이 어린 배우는 어둡고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고 극단적인 역할에만 매력을 느끼고 도전해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 비해 '타이태닉'의 잭 캐릭터는 너무도 '정상적'이었던 것. 그래서 캐머런 감독은 다시 한번 디카프리오를 불러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그의 근성을 건드린 것이다.
"아무래도 너는 이 역할을 못할 것 같다. 리처드 3세 같은 꼽추나 절름발이 역할만 하고 싶은 거지? 그러니 안되지. 못 해낼 것 같아. 너는 배우 지미 스튜어트가 했던 것 같은 연기는 못 하지? 가만히 있어도 그냥 너무 멋진 그런 연기 말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는 그런 배우가 필요해. 잭의 캐릭터를 연기할 배우는 그만큼 '어려운 연기'도 소화해야 하니까."
결과는 성공이었다. 디카프리오에게 '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전히 '어려운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어서였다. 결국 '타이태닉'은 대성공을 거뒀고 두 사람은 서로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캐머런 감독은 이렇게 덧붙였다.
"처음엔 레오가 곧 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잭은 레오가 아니다. 레오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연기가 만들어 낸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