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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십 년 전 먹을 거리에 대한 집착 끊었는데 이제 와서…

"그래도 나는 부모나 자식들에 대한 애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아버지가 직접 한번 해보세요. 솔직히 칼 자루를 쥘 힘이나 무 배추를 들 힘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열흘 전쯤에 또 끼니 문제로 아버지와 가시 돋친 언쟁을 벌였다. 50세가 넘은 아들과 80세가 목전인 아버지가 달포 사이에 먹을 거리를 두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하는 걸 남들은 어떻게 볼까.

먹는 문제를 두고 잡음을 내는 게 창피한 일이지만 지난 2월 중순 처음 말다툼을 한 이후로 하루 세끼 준비에 관한 한 우리는 서로 조금도 입장이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이 엄마가 유달리 풍성하게 밥상을 차린 걸 계기로 언쟁을 벌이게 됐다. 주말 마다 이스트 밸리를 찾는 아이 엄마는 항암치료를 받는 시어머니가 서울에서 5개월 만에 집을 찾자 수십만 원을 들여 장을 봐왔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 하루 종일 음식을 해댔다. 좀 과장하면 이틀 연속으로 하루 세끼가 잔칫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막상 뭘 식탁에 올려놓아도 잘 들지 못했다. 항암 치료를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욕이 좋지 않다. 반면 아버지는 흡족해 "이렇게 식탁이 풍요로우니 참 좋다"고 말했다. 이 말이 다시 한번 나를 자극했다. "어떻게 평소 이렇게 먹을 수 있겠어요. 매 끼니마다 다른 찬거리를 준비하느라 머리가 터지는 느낌이에요. 그냥 마음 비우고 드세요." 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세상에서 나한테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음식 준비하는 거다. 정말 이쪽에는 내가 소질이 없다"면서 "하지만 너희들이라면 부모를 위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렇게까지 힘들이지 않고도 반찬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거였다.

입에 무슨 음식이든 들어만 간다면 그 자체로 만족인 나로서는 식탁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엄청난 '집착'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아마도 아버지 본인은 사람으로서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 인지상정이라고 주장할 게다.

우스개 소리로 먹기 위해 산다고 하기도 하고 살기 위해 먹는 거라고 하기도 한다. 그 어느 쪽이 정답이든 삶에서 먹는 게 차지하는 비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치 크다.

아버지와 극단적으로 성격이 다른 데서 오는 갖가지 견해 충돌 등은 대부분 일회성으로 끝나지만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끼니 문제에 따른 중압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이스트 밸리 생활을 조기에 접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이유이다.

엊그제 어머니가 항암 치료를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버스터미널까지 배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먹을 거리를 포함한 삶에 대해 우리 부자가 또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조선 시대 왕보다 풍요롭게 사는 거 아닐까요. 일부 남성들 기준으로는 왕비나 후궁이 여럿이 아닌 점에서 결핍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말이에요."

아버지는 내 얘기에 대충 동의를 하면서도 먹을 거리 문제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우주에 비하면 속된 말로 사람 몸뚱이는 티끌이나 먼지도 못 된다. 하지만 사람 하나가 품을 수 있는 욕심은 우주보다 결코 작지 않다. 그 큰 욕심은 묘하게도 부릴수록 채워야 할 공간이 커진다. 한때는 나도 식탐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골목을 누비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먹을 거리에 대한 갈증은 채워지기는커녕 더 커졌다. 그래서 십 년 전쯤인가 어느 날에 먹을 거리에 대해서는 아예 마음을 떼어 내버렸다. 그랬더니 산다는 게 그거 하나로 굉장히 홀가분해졌다.

틈날 때마다 에둘러서 이런 류의 얘기를 식탁에서 꺼내는데 아버지에게 결과적으로 우이독경이다. 초월한 것으로 생각했던 먹는 문제가 이스트 밸리에서 내게는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로 다시 나를 괴롭히고 있는 형국이다. 자연스럽게 산다는 게 참으로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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