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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로빈슨, 가장 못했던 스포츠가 야구

Los Angeles

2012.04.1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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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벽 허문 진짜
주인공은 리키 브랜치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인물이 누구입니까?"

며칠 전 후배 기자가 밥 먹다가 느닷없이 물었다. 사실 좋아하는 스포츠 인물은 많다. 하지만 기자는 가장 좋아한다기 보다는 '가장 존경하는 스포츠 인물'인 재키 로빈슨과 브랜치 리키가 떠올랐다. 미국 스포츠의 상징인 야구. 그 종목에 인종차별 벽을 허문 주인공인 재키 로빈슨. 그리고 로빈슨을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키기 위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웠던 전 다저스 구단주 브랜치 리키.

다저스 관련 역사책을 보면 리키가 남보다 뛰어난 윤리의식을 가져서 로빈슨이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로 탄생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를 만들면 그 선수를 보기 위해 많은 관중이 운집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문데는 돈의 힘도 작용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리키는 먼 훗날 자신이 미국 사회에 인종차별의 벽을 무너트리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로 기억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싫어했다.

그러던 중 재키 로빈슨이라는 선수를 보고 그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것이다. 백인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정도로 외모가 출중하다는 점. 화술이 뛰어난 점. 인품까지 훌륭하다는 것을 알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이 친구야(This is the man)."

▶"안 싸울 용기가 있냐고 묻는거다"

1945년 8월 28일에 리키는 재키 로빈슨을 사무실로 불렀다. 로빈슨과 정식으로 메이저리그 계약을 하기 위해 부른 것이었다. 로빈슨이 먼저 리키에게 물었다. "맞서 싸우기를 두려워하는 흑인 선수를 원합니까?" 필드에서 인종차별을 받으면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뉘앙스였다.

그런데 여기서 리키가 야구 역사에 남을 명언을 한다.

"나는 흑인의 기수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선수를 찾고 있다네. 그냥 경기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야. 남들이 모욕을 줘도 비난을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여유와 배짱을 가진 선수를 원하네. 만약 어떤 녀석이 2루로 슬라이딩해 들어오면서 '이 빌어먹을 깜둥이 놈아'하고 욕을 한다고 치세. 자네 같으면 당연히 주먹을 휘두르겠지? 나도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대응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나는 여기에 맞서 싸울 용기가 있냐고 묻는 게 아니야. 안 싸울 용기가 있냐고 묻는거야."

로빈슨은 그럴 용기가 있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리키와 로빈슨은 손을 잡았다. 이후 로빈슨은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활약하며 내셔널리그 신인왕과 내셔널리그 MVP 타격왕으로 선정됐고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6회 진출에 공헌했다.

▶스포츠 중 야구만 못했다

로빈슨은 UCLA 재학시절에 이미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스포츠 천재'라는 각광을 받았다. 육상 멀리뛰기 종목에서 전국 최고의 기록을 보유했고 풋볼에서는 펀트 리터너로 전국 최고의 성적(당시 펀트 리턴 전국 1위)을 올렸다. 농구 테니스 탁구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야구만큼은 형편없었다. 1939년 UCLA 팀에서 기록한 그의 타율은 .097이다. 유격수로 뛰었는데 에러만 10개를 범했다. 더욱이 UCLA는 CIAA(California Inter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소속이었는데 야구실력이 전국 평균 수준에도 못 미치는 리그였다.

로빈슨은 대학시절 기록이 워낙 창피해서인지 자서전에서도 UCLA 야구 얘기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역으로 추론하면 그가 이때 야구를 못했기 때문에 훗날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처음으로 오기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필코 야구를 정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UCLA를 떠난 뒤 그는 '동네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소프트볼도 하며 실력을 연마해 나갔다. 군 입대 뒤에도 야구팀을 만들었고 제대했을때에는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가 됐다. 그리고 후에 네그로리그(흑인리그)를 평정 흑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문을 열었다.

로빈슨이 다저스와 사인하면서 흑백 벽을 깨겠다는 꿈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실패했던 스포츠를 정복할 수 있다'는 걸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더 컸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바로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가 재키 로빈슨을 미국 역사의 위대한 인물로 만든 것이다.

내일(4월 15일)이 '재키 로빈슨 데이'다. 65년 전에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던 날이다.

원용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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