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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알고보니 난 '노동체질'…농사규모 더 늘려볼까

Los Angeles

2012.04.1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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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헌데유." "정말 부지런 하시네." 지난 두어 달 남짓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십 수번도 넘게 이런 말을 들었다. 해가 뜨기도 전인 오전 6시부터 삽 자루를 들고 나대는 나를 보고 이런 식으로 한마디씩 하는 거였다. 이스트 밸리에 들어와 집 짓고 난 뒤 농사 지으며 살겠다고 했을 때 동네 어른들 중 상당수는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제 시골 생활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그렇지 내 진의를 의심하는 동네 사람들은 없다.

"어? 몰라봤슈. 미안허요. 전에는 얼굴이 허연했는데 지금은 새깜해져버렸네. " 어떤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은 마당에서 작업을 하는 나를 보더니 일당을 받고 일하는 인부인 줄 알았다고도 했다. "언니 오빠 이게 뭐예요. 자식을 완전히 상 농사꾼을 만들었네. " 두어 달에 한번 꼴로 들르는 칠순이 다 된 고모 한 분은 얼마 전 내 행색을 보고서는 안타까워서 어머니 아버지에게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조카 뭐 할려고 이렇게 고생을 혀." 고모는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안쓰러워 했다. 나는 그냥 웃으며 "몸이 좀 힘들지만 좋다"고 답했다.

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편이어서 몸이 다소 힘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막노동 체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난 두어 달처럼 휴일도 없이 순수하게 하루 평균 9~10시간씩 몸을 부리며 살기는 힘들 수도 있다. 내 나이도 오십 줄을 넘었다. 육체적으로도 지금과 같은 막노동은 잘해봐야 앞으로 10년 정도나 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방에 가만 있으면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는 게 막노동이 내 성정에 맞는 게 분명하다. 하루 이틀이지 끼니 때마다 수저를 거두기 무섭게 집밖으로 달려나가 농기구며 연장을 집어 드는 게 즐겁고 기쁘니 이건 체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가을 귀국해 이스트 밸리로 들어온 뒤 겨울 아주 추울 때 며칠을 빼고는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금까지 휴일답게 푹 쉰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몸으로는 참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시기였는데 물론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나도 내 자신이 노동 체질이라는 걸 이번에 난생 처음 알았다. 파워는 좀 있는 편이지만 섬세함은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나름 내 자신을 재발견한 셈이다. 육체적으로는 상체 관절 그러니까 어깨 손목 손가락 등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점도 확인하게 되었다. 다만 허리는 상당히 튼튼하게 타고났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 전에는 내 신체 어디가 약하고 강한지를 잘 몰랐다.

최근에는 갑자기 농사 규모를 좀 더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었는데 이 또한 막노동 쪽에 대한 자신감과 재미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경작지는 밭을 중심으로 2만 스퀘어 피트가 좀 못 된다. 가능하다면 내년쯤에는 얼마간 남의 땅을 빌려서라도 작물 경작 면적을 늘려보고 싶다. 지난 해 12월 김장에 이어 보름 전에는 배추 몇 포기로 김치로 담고 또 된장도 작은 항아리로 하나 가득 담갔는데 김치와 된장 등 발효식품으로 남의 입맛을 사로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아직 생겨나지 않고 있다.

당초 시골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현금은 발효 식품을 만들어 팔아서 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각종 김치와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 장아찌 등이 그 것들이다. 이들 발효 식품은 대량으로 생산하는 게 아니라 우리 식구들에게 필요한 것보다 좀 더 양을 늘려 잡아 만들어서 남은 걸 판다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 식구에게 필요한 고추장이 한 단지라면 세 단지를 담아서 나머지 두 단지를 파는 식이다. 헌데 최근 막노동에 대해 자신감이 붙으면서 발효 식품 생산을 약간 줄이는 대신 농사 규모를 다소간 늘려 현금을 확보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이 모든 게 다 머릿속의 생각뿐이라 실제로는 시행착오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사실 자체로 즐겁고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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