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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사칙연산] 변호사 박영선

Los Angeles

2012.04.2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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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 하루 살아라…-죽음과 돈 사이에는…
죽음과 돈 사이의 공간이 있다.

박영선 변호사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라고 말했다. 유산상속변호사로 활동하며 돈과 죽음 사이의 공간을 관조한 답이다. 항상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가." 스스로 던지는 질문 속에는 인생의 '사칙연산'이 숨어있다. 그리고 웃으며 답한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 서른한 살이 되던 해였다. 당시 뉴욕대학교(NYU)에서 세금법을 공부하던 박 변호사는 죽음을 처음으로 가장 가까이서 만났다. 세계가 경악했던 9.11 테러 사건이었다.

당시 기숙사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창문을 여는 순간 저 너머로 쌍둥이 빌딩 하나가 검은 연기에 휩싸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할 말을 잃고 우두커니 몇 초쯤 서있었을까. 곧장 또 다른 비행기 하나가 나머지 건물을 향해 돌진해 가고 있었다. 박 변호사 앞에서 쌍둥이 빌딩은 그렇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죽음을 '목격자'적인 관점에서 보게 됐죠. 월가에서 잘 나가던 제 친구도 그 사건 때문에 죽었고요. 그 사건을 통해 죽음은 삶의 다른면이 아니라 함께 맞물려 가는 인생의 일부란 것을 깨달았죠." 당시 박 변호사는 앞만 보며 달리던 전도유망한 변호사였다. 1999년 가주 변호사 시험 합격 후 잠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NYU에서 전문성 향상을 위해 세금법을 공부할 때였다. 하지만 그 사건은 박 변호사가 잠시 멈춰서 인생의 총체적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했다. 죽음에 대한 목격은 삶의 본질적 의미를 찾는 '시발점'이 됐다. 삶의 모든 것은 죽음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 박 변호사는 글을 쓴다. 지난해 11월 유산상속 변호사로 10년 넘게 활동하며 느꼈던 생각이나 경험 등을 담은 책(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을 펴내기도 했다. 유산상속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매일 돈과 죽음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유산상속 변호사를 하다 보면 정말 돈이 많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죠. 그 사람들이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는거 보면 욕심도 생기고 부에 대한 열망이 왜 안생기겠어요. 그때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우리 눈을 보이지 않는 것에 둬야 한다(고린도후서4장18절)'고 되새기고 있어요. 아무리 성공이나 부를 이룬다 해도 죽음은 절대 넘지 못하잖아요."

유산상속 변호사란 직업은 죽음과 재산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박 변호사는 직업을 통해 성공과 부가 죽음 앞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매일 깨닫게 만든다. 그러한 깨달음은 자꾸만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내면의 욕망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박 변호사는 인간에게는 분명 공통적으로 '공허함'이 있다고 했다. 재산이 많아서 유산을 물려주고 하거나 부모로부터 거대한 재산을 상속 받는 자식 등 많은 의뢰인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공통적으로 '허무함'을 토로한다.

"돈이 정말 많기 때문에 생산적이 아니라 소비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유산분배 등에 대해 상담을 하면 돈이 있어도 '뭔가 허하다'라고 말해요. 가끔 죽음을 앞둔 사람들 때문에 유언서 작성을 하려고 변호인 자격으로 응급실에 가는데요. 죽음과 재산 앞에서 마무리 하는 장면을 많이 봐요. 결국 삶을 살면서 무엇을 추구했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삶을 뜻 깊게 마무리하는지가 중요한거죠."

X 박 변호사는 집필 활동을 하면서 사색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이는 박 변호사가 삶을 몇 배 더 멀리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했다.

"글을 쓴다는 건 엄청난 책임감이 있더라고요. 진실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나를 꾸밀 수 없잖아요. 내 안에 나를 잘 포장하고 남에게 잘 보이고픈 욕망도 있어요. 생활인으로서의 나와 책에서 느껴질 수 있는 작가로서의 나 사이에서 괴리감도 많았죠. 그래서 탈고를 한달 미루기도 했어요. 여러번 고쳤어요. 나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내 가족이 읽을거라는 생각으로요. 책을 쓰는 그 시간들이 저를 돌아보게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박 변호사는 집필 활동을 통해 삶의 역할 역시 되짚어 보게 됐다. 이는 사명을 발판 삼아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몇 단계 점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을 쓰면서 변호사에 대한 역할을 생각했어요. 타인을 방어해주거나 옹호해주고 혹은 자문해주는 게 변호사죠. 중재를 하거나 협상을 대신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나는 '도와주는 변호사'의 역할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쓰는 시간은 내면적으로나 직업적으로도 많은 걸 얻었던 시간이었습니다."

/ 변호사 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지는 않은지 물었다. 박 변호사는 '채우기보다 비우고 가져가기보다 나눠주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법적으로 유산상속을 담당하면서 진짜 중요한 것은 돈을 버는 것 보다 어떤 가치관으로 돈을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꼈어요. 돈을 잘 쓰려면 올바른 가치관으로 사회에 잘 환원할 수 있는 법도 생각해야 해요. 그래서 '멘토링'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을 꼭 나누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면 사회적인 시대 흐름도 잘 알아야죠. 20년 30년 후를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만 대와 대를 넘기는 부가 이어질 수 있잖아요.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시각과 통찰력을 가질 수 있도록 '멘토링'을 통해 돕고 싶습니다."

글: 장열 기자

사진: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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